"우리 모두 다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해" -신중현과 뮤직파워 '아름다운 강산' 중

기타의 절묘한 리듬 커팅이 파도처럼 넘실대온다. 순간 삶이 고동치고 세계가 출렁인다. 크게 숨을 내쉬고 "실바람이 불어오는" 이 땅과 "붉은 태양이 비추는" 저 바다로 나설 채비를 해야 한다. 온몸을 풀무질하는 저 리듬 기타에 몸을 실으면 '코리아 판타지'의 대서사가 우리를 이끈다. 한국 록 역사의 한 정점을 이룬 신중현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은 그렇게 매혹적으로 문을 연다. 이 노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그 리듬 커팅 위로 장장 8분 동안 벅차오르는 삶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러므로 신중현의 날렵한 리듬 기타는 삶의 통시적 축이다.

신중현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아름다운 강산'은 관제 계몽 가요들의 자기기만적 집단의식을 경멸하듯 이 땅의 개별적 삶을 더없이 낭만적으로 불러낸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라며 사소한 풍경에도 설레며 시작하는 노래는 드넓은 광야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거쳐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 나의 마음은 너의 마음"이 되는 장엄한 실존의 연대(連帶)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서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 지고"자 한다. 우리는 잠시 머물지만 삶은 계속된다. 내가 사라진 먼 훗날에 또 누가 있어 사랑하고 목 놓아 노래할 것인가.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 꿈"을 만들고자 하는 노래는 시공을 넘어 존재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로커는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시인이 된다. "우리 모두 다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해." 이 뜨겁고 눈물겨운 독려가 노래의 방점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군상이 할 수 있는 일이 '다정(多情)' 말고 뭐가 있겠는가. 우린 모두 연민으로 다정하다. 지금 광장의 무수한 개인처럼 역사의 격류 속에 이름 없이 사라져간 그들 모두 다정하였으리라. '아름다운 강산'은 록의 거인 신중현이 우리에게 선물한 최고의 애국가다.

곡은 가요의 일반적 'A-B-C' 작곡 패턴에서 벗어나 점층적 드라마 같은 대곡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절정인 줄 알았는데, 그다음에 새로운 절정이 오는 진경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은 1972년 '신중현과 더 맨'이 발표했다. 오르간과 오보에 사운드가 무겁게 흐르며 시작하는 이 버전엔 젊은 신중현의 패기가 시퍼렇게 살아있다.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인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 후반 4분여 동안 사이키델릭 기타 연주가 휘감아 돈다. 2년 뒤 '신중현과 엽전들' 2집에 실린 새 밴드 버전은 정치적 이유로 다소 얌전해졌다.

박정희 정권과 불화한 탓에 긴 음악적 암흑기를 거치고 난 뒤, 1980년 재기하며 발표한 것이 '신중현과 뮤직파워' 버전이다. 신중현은 절치부심 끝에 당시로선 획기적인 9인조 밴드를 만들어 '브라스 록'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던졌다. 이 버전이 단연 최고다. 감정의 완급을 완벽하게 조절해가는 드라마틱한 편곡이 음악적 황홀경을 선사한다.

신중현의 기타 연주와 장중한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솔(soul) 넘치는 두 여성 코러스가 빚어내는 보컬 앙상블은 엄지를 치켜세울 만하다. 화려하게 터져 나오는 브라스 사운드는 몸을 뜨겁게 달구며 노래의 낭만성을 극대화한다. 이후에 수많은 가수의 리메이크 버전이 나왔으나, 어느 누구도 원곡의 낭만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대부분 내지르기만 하는 댄스곡에 그치고 말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풍화시킨다. 지금의 모든 격동도 곧 잊힐 것이다.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은 저 광대무변한 시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리라. 나의 애국가 '아름다운 강산'을 따라 불러본다. 이곳에 살았노라, 사랑했노라, 노래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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