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가 닥터드레와 화촉을 밝힌다는 내용의 가짜 기사.



이희호 여사가 오는 7일 토요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미국 유명힙합가수 닥터드레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들은 국내 실력파 힙합 가수 mc무현을 통해 알게 됐다. -노미현 머갈리안 정치부 기자-

새해 첫날부터 인터넷에서 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에 널리 퍼진 '뉴스'다.
이딴 걸 누가 진지하게 믿냐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딴 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곳곳에서 "이희호 여사가 고 김대중 대통령의 비자금을 미국으로 빼돌리려고 미국인과 위장결혼을 한다"는 '분석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를 근거 삼아 별별 헛소리를 퍼트리는 무지한 이들이 있으니, 이게 왜 가짜 뉴스인지 분석을 해야겠다.
정초부터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고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인데, 이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을 용서하라. 우리 땅에는 저 '누가'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생각보다 많다.

우선 머갈리안은 존재하지 않는 언론사다. 전 세계에 화제가 될만한 초대형 특종을 이름조차 낯선 언론사에서 단독보도한다는 것부터 좀 이상하지 않는가?
'전남 장흥군 부산면 효자리 고모(83)씨가 대장암 특효약을 발명했다'고 떠드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닌데, 웬만하면 없다는 것이다.
머갈리안은 국내의 여성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안'을 살짝 비튼 단어일 뿐, 언론사와는 무관하다.

노미현 기자도 없는 사람이다.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비틀어 여성화한 이름일 뿐이다. 실제로 일베에서는 여성 사진에 노 대통령 얼굴을 합성해 노미현이라고 부른다. 고로 이 가짜 뉴스는 극우파 성향의 네티즌이 만들어 뿌렸을 가능성이 크겠다.

언론사와 기자는 가짜라고 하더라도, 상황은 팩트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MC무현'이라는 대목에서 이미 '가짜'라고 자백하는 꼴이다.
MC무현 역시 노 전 대통령의 희화화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물 중 MC무현을 예명으로 쓰는 이는 없다.
2013년 전후로 일베 유저들이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육성이 담긴 동영상에서 각종 발언을 추출하고 짜깁기해 만든 합성 음원을 MC무현의 작품이라 부를 뿐이다. 일베가 이 작업을 위해 모아둔 노 전 대통령 자료만 해도 테라바이트(TB=1024GB) 단위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용량으로만 보면, 일베는 그 누구보다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셈이다.

사실 어느 정도 연령대의 사람이라면, '닥터 드레와 결혼한다'는 대목에서 '빵' 터지고 말 것이다. '닥터 드레'는 에미넴의 스승이며, 힙합과 랩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돈이 아쉬워 위장 결혼을 할 이유도 없다. 그가 튜닝을 맡은 헤드폰은 지난 2012년 미국 내 100달러 이상 고급 헤드폰 시장에서 점유율 64%로 시장 1위를 차지했다. 2014년에는 1년 동안 가장 돈을 많이 번 아티스트로 기록상 1위를 차지했다. 현금 자산만 해도 8000억~9000억원대에 이르며, 부동산, 레이블, 사업 등을 종합하면 총 재산은 1조원을 훌쩍 넘긴다. 만날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996년 결혼한 부인 니콜 영과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고 21년째 잘 살고 있다.

이 괴소문은 현재의 국정 이슈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논리학에서 소위 '훈제 청어'라 부르는 기법으로, 무관한 주제인 Y를 제기해 원 주제인 X에서 관심을 돌리는 수법이다. 이희호 여사가 가짜 결혼으로 수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빼돌리는 판에, 최순실 일가가 조금 해먹은 것에 관심 쓸 필요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가짜 뉴스를 꾸민 사람 나름은 무릎이 탁! 쳐질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였을지 모르겠다. 국민 지능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본 건지, 아니면 달린 머리가 장식인 건지는 몰라도.

'한 번 웃자고 만든 가짜 뉴스에 속은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난리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 뉴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의 피자가게 '코멧 핑퐁'에서 에드거 매디슨 웰치(28)가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웰치는 경찰 조사에서 클린턴의 '피자게이트'를 자체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터넷에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가 퍼졌고, 이를 믿은 웰치가 난동을 벌인 것이다.

가짜 뉴스 때문에 핵전쟁이 터질 뻔도 했다. 그것도 불과 열흘 전에.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전날인 지난해 12월 24일(현지 시각)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이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에 핵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했다"며 "파키스탄 역시 핵무기 보유 국가임을 잊은 듯하다"고 밝혔다.

아시프 국방장관이 돌연 핵 공격을 시사한 것은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파키스탄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할 경우 핵 공격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뉴스 때문이다. 그가 뉴스를 접한 온라인 사이트 'AWD뉴스'는 주로 가짜 뉴스를 취급하는 풍자 사이트였고, 아시프 국방장관이 본 기사 역시 가짜였다.

속이는 놈도 나쁘지만, 때론 속는 놈도 무결하지는 않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한들 인간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이희호♡닥터드레를 정말 믿었던 분이 계신다면, 충격적인 소문을 접했을 때 인터넷에 검색 한번 해 보는 습관은 들여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