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만 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국제기구를 뚫을 제1 조건은 자신감입니다."
최안나(32)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파리 본부에서 일한다. 국제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교육국 PISA팀 소속이다. 하루에도 이메일 수십 통이 날아든다. 발신인은 OECD 입사 비결을 묻는 한국 젊은 여성들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무모함이 필요한데 후배들은 너무 완벽한 준비를 하려고 해요.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돈키호테처럼 도전하라'고 귀가 따갑게 가르친 건 엄마였다. 안나씨는 이복실(56) 전 여성가족부 차관의 맏딸이다. 이 전 차관은 30년 공직 인생 대부분을 성매매특별법 제정, 호주제 폐지, 보육법 개정 등 여성 관련 정책에 바친 이 분야 베테랑. 두 딸 키우며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이제 막 '정글'에 발 디딘 안나씨에게 둘도 없는 멘토다. 작년 8월 OECD에 들어간 뒤로도 전화와 이메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일단 견뎌라'가 제1 지침이었죠(웃음). 둘째는 자기 안의 유리 천장을 없앨 것, 셋째는 전임자와 다른 방식으로 일할 것, 넷째는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 마지막이 중요한데, 실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야망을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직장 생활한 지 1년 4개월밖에 안 됐지만 안나씨는 "엄마의 치열했던 삶을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국제기구도 일반 기업처럼 여성들 숫자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줄어요. 저희 교육국만 해도 직원의 70%가 여성인데 높은 자리는 거의 남자들 차지죠.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 매일 절감하고 있습니다."
안나씨는 미국에서 공부했다. 해외 연수 간 엄마를 따라 워싱턴주로 간 게 고 1 때. 이름 없는 시골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못해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윤선생 영어교실 배우다 얼떨결에 따라간 거라(웃음), 토론식 수업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미국 선생님들은 정답 대신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하고 계속 물으셨으니까요. 생각하는 힘을 많이 기른 것 같아요."
UC버클리에서 보건경제학을, 코넬대에서 정책분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OECD에 들어갔다. 하지만 안나씨는 "꿈의 직장은 없다"며 웃었다. "PISA팀 일이 엄청 많아요.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모처럼 휴가 얻어 서울에 왔는데도 올 4월 발표하는 세계 청소년 웰빙 조사 보고서를 제가 써야 해서 재택근무 중입니다."
지난달 발표된 2015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 실력이 현저히 떨어진 데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2018년부터는 응용력 평가를 강화할 예정이라 암기 위주 수업에 익숙한 우리 학생들이 어떤 성적을 받을지 걱정이에요." 그녀가 귀띔한 국제기구 뚫기 전략은 이랬다. "영어 소통 능력(발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음), 보고서 작성 능력이 중요해요. 스페인어·불어까지 두루 잘하면 좋지만 한 가지 언어를 뛰어나게 잘하는 게 유리하죠. 관심 부서의 최신 리포트를 꼼꼼히 숙지하는 건 기본이고요."
휴가 동안엔 얼마 전 엄마가 펴낸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클라우드나인)를 밑줄 그으며 읽는 중이다. "역경 딛고 우뚝 선 한국 여성 25명을 엄마가 인터뷰해서 실으셨어요. 윈윈하는 인성 리더십이 뭔지 다시 배우는 중이에요. 저도 '성공'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는 사람이 돼보려고요." 애인은 있느냐는 질문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보다 연애가 훨씬 어려워요. 그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