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 동안 매달렸던 일제(日帝)의 한국 병합 불법성 연구를 마무리 짓게 돼 홀가분하다. 조선이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됐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던 상황에서 일본의 한국 강점이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강제와 기만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 학계의 공감을 얻은 것에 보람을 느낀다."
20세기 초 일본의 한국 침략 과정에 담긴 역사적·국제법적 문제점을 실증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일본·구미 학계에 알리는 데 힘써온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총정리하는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지식산업사)를 펴냈다.
조선시대를 주로 연구하던 이태진 교수가 대한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2년 서울대 규장각에 수장된 대한제국의 조칙·칙령·법률 60여점에서 순종 황제 서명이 위조된 것을 발견하면서부터다. 일제 통감부의 일본인 관리들이 써넣은 것이었다. "'보호조약(을사조약)' 등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조약들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이 교수는 조약 원본들을 확인했다. 그 결과, 황제가 조약을 승인한 비준서가 없었고 조약 명칭도 적혀 있지 않았다. 조약 한국어본까지 일본 측이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그 무렵 김기석 서울대 교수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고종이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에게 준 신임장과 수교 7개국 원수에게 보내는 친서를 확인했다. 고종은 여기서 보호조약은 일제가 강제한 것이고 자신이 승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신과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보호조약'에서 '병합조약'까지'(도서출판 까치·1995년)를 발간했다.
이후 연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하나는 '한일의정서'(1904년 2월), '1차 한일협약'(1904년 8월), '2차 한일협약'(보호조약·1905년 11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1907년 7월), '병합조약'(1910년 8월) 등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단계적으로 빼앗은 조약들의 불법성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조약 체결 과정은 전권대신 임명과 황제의 비준 절차를 건너뛰거나 실무자 사이의 '각서(memorand-um)'를 정부 간 '협약(agreement)'으로 바꿔치기하는 등 기만책으로 점철돼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조약 체결이 일본군의 군사력에 의존했던 점을 밝히는 것이었다. 일본이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관련 자료 공개를 추진하고 2001년 아시아역사자료센터를 설치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특히 일본 육군성이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자료를 모아 편찬한 '육군정사(陸軍政史)'를 입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자료집에 실린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보고서는 보호조약 체결 당시 일본군 기병 연대와 포병대대까지 한양 성내에 투입해 완전 장악했다며 조선 강점의 '제1 공로자'는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동안 강제 병합 때 일본의 관료들이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육군성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 병합에 소극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6월 조선통감을 사직하고 병합 찬성으로 돌아선 과정도 드러났다.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면서 의병 항쟁이 격화되자 이토는 1909년 초 순종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며 민심을 다독거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구∼부산∼마산을 기차로 도는 남순(南巡), 평양∼의주∼개성을 방문하는 서순(西巡) 때 가는 곳마다 수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자 순종은 그들에게 애국과 신문물 수용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군민(君民)이 하나가 된 저항심을 확인한 이토는 침략 정책의 주도권을 군부에 넘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태진 교수의 연구는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소개돼 일본 학자들과 토론이 벌어졌고, 한·미·일 학자가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로 이어졌다. 또 2010년 일본의 한국 병합이 불법이라고 선언한 한·일 지식인 1144명 공동성명과 2015년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한·일·미·유럽 지식인 공동성명도 이 교수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태진 교수는 "한·일 친선과 동아시아 평화공존은 일본의 정확한 역사 인식과 진정한 반성 위에서 가능하며,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