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여성이 인터넷 개인 방송 화면에 나온다.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남성 BJ가 초대한 이른바 '게스트'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성적인 농담을 주고 받다가, 남성 BJ가 돌연 "화장실에 간다"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혼자 남은 게스트는 기다렸다는 듯 옷을 하나 둘 벗는다. 방송 채팅창에 '더 벗어라'는 시청자의 요구가 빗발친다. 시청자가 BJ에게 선물하는 '유료 아이템'도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게스트는 마스크를 쓴 채 성기까지 노출한다.
인터넷 음란 방송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법의 그물망을 피해가려는 방송 BJ들의 수법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요즘은 BJ가 본인의 방송에서 음란 행위를 하거나 성기를 노출하는 '정직한' 방법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신원 불명의 제3자를 출연시키거나 방송 화면 프레임(frame)을 교묘히 이용하는 '신(新)꼼수'들이 속속 등장해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BJ들 사이에서는 "음란 방송 한 번 걸리면 '영정(방송 영구 정지)' 당하기 십상이라 이것도 머리를 써가며 해야한다"는 말이 나돈다.
◇대타 게스트 쓰고 화면 바깥에서 음란 행위
꼼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타(代打) 게스트'다. BJ 본인은 신원이 노출돼 있고 자신의 음란 행위가 형사 처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게스트를 출연시켜 대신 벗게 하는 방식이다. 이때 게스트는 보통 마스크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고, BJ 본인은 게스트의 음란 행위 직전 '화장실'이나 '식사' 핑계를 대며 화면 밖으로 나간다. 나중에 경찰 등이 추궁해도 BJ는 '나는 게스트가 그런 행동을 한 줄 전혀 몰랐고 예상도 못했다'며 발뺌한다.
실제 작년 10월 BJ A씨의 방송에서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 게스트가 출연해 A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해당 인터넷 방송국이 A씨를 추궁했으나, A씨는 "그런 일이 벌어진 줄 몰랐다"며 발뺌해 아무런 자체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에 행정 제재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나서 A씨의 방송을 영구 정지 시켰다. 그러나 A씨는 형사 처벌은 피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게스트를 대타로 써도 정보통신망법상 행정 제재는 피할 수 없다"면서도 "형법상 공연음란죄 성립을 위해선 '당시 음란 행위가 벌어지는 걸 알았고 의도했다'는 고의(故意)가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BJ가 끝까지 뻗대면 처벌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꼼수는 '프레임 아웃(frame out)'이다. 음란 행위로 추정되는 행동을 방송 화면 바깥에서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남성 BJ가 여성 게스트와 함께 출연해 '구강 성교를 하겠다'고 말한 뒤, 자신의 성기 부분을 화면 바깥으로 '프레임 아웃' 시킨 채 자극적인 표정·목소리로 팔을 움직인다. 이 경우 실제 음란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심의 당국이 문제삼으면 "실제로 한 것은 아니고 하는 척을 했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방심위 관계자는 "이 경우 시청자를 흥분시키기 위해 화면 프레임을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다가 실수로 중요 부위가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 순간을 화면 캡처로 포착해 방송 제재하거나 형사 고발한다"고 말했다.
◇가슴 노출이나 성행위 모사도 음란은 아냐
이밖에 단속을 피하기 위한 '비밀방'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BJ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유료 아이템을 선물한 회원만을 대상으로 비공개 음란 방송 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유료 아이템은 그 금액의 40% 가량을 인터넷 방송국이 수수료 명목으로 뗀 뒤 BJ가 현금화할 수 있다. 비밀방에 들어올 자격을 갖춘 회원들은 이미 '충성도'가 어느 정도 검증됐으므로 신고 당할 위험이 줄어든다. 비공개 방송에 초대하는 절차도 이중·삼중이다. 예를 들어 최근 6개월간 BJ에게 10만원 이상 준 회원에게만 방송 운영진의 SNS 아이디를 쪽지로 알려준 뒤, SNS 로 대화 신청한 회원에게 다시 본인 확인을 거쳐 '비밀방' 인터넷 주소를 전달하는 식이다. 비밀방에선 '안전 장치'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대놓고 성행위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BJ들은 법률상 '선정(煽情)'과 '음란'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한다. '선정'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19세 미만의 시청만 금지되는 콘텐츠다. 이에 반해 '음란'은 인터넷상 유통 자체가 금지되는 콘텐츠다. 판례와 방심위 심의규정상 인터넷 방송에서 여성이 가슴을 온전히 드러내고 남성이 이를 만져도 선정이지 음란은 아니다. 성행위가 연상되는 동작을 하는 것도 선정의 영역이다. 성기나 성행위가 구체적으로 직접 보이는 수준에 이르러야 음란에 해당한다. 따라서 BJ들은 사실상 성행위와 다름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19금 시청 제한'만 준수하면 합법의 영역에 발을 걸칠 수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인터넷 방송은 명칭은 '방송'이라 불리지만 법상으론 '통신' 영역에 속해 지상파·케이블 방송보다 다소 완화된 음란성 기준이 적용된다"며 "몇 가지 치명적인 노출만 피하면 불법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아 BJ들의 꼼수들이 통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방심위는 지난 11월부터 개인 인터넷 방송 음란물에 대해 집중 모니터링을 진행했으며, 불법 음란 방송으로 의심되는 수백건에 대해 현재 심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