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임산부가 아님에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사람들 때문에 선의의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불쾌해지는게 문제라고 지적됐다. 임산부는 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는 게 결코 쉽지 않고, 시민들은 ‘임산부’에게만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것이 캠페인 정착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임산부 알림 가방고리’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동그란 배지를 착용한 임산부는 굳이 “저 임신했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고, 시민들은 임산부를 쉽게 구별해 기분 좋게 양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체로 임산부 배지 캠페인에 대한 반응이 좋은 편이며 ‘임산부 뱃지 인증 사진’들도 자주 올라온다.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위 사진을 올린 네티즌은 “‘자리를 비워주셔서 제가 앉을 수 있었어요. 배려해주신 덕분에 편히 갑니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일부러 배지를 잘 보이게 꺼내놨다”고 썼다.
그런데 지난 4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이 논란이 됐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문체로 쓴 것 같은 이 글은 ‘임산부 확인 안 하고도 나눠주는 지하철역이나 보건소 있으니, 배지 받아서 걸고 임산부 배려석 이용하면 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후 이 게시물이 캡처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졌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서울메트로 홈페이지에는 ‘산모수첩 소지 임산부나 가족’이 배지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돼있다. 그런데 논란이 된 인터넷 게시글 내용대로 ‘산모수첩’ 확인 등이 없이 배지를 그냥 받을 수 있다면 캠페인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실제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임산부 배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본지 인턴이 직접 확인해봤다.
실험에 참여한 인턴은 올해로 24세. 키 168㎝, 체중 50㎏ 미만의 비교적 마른 체형이다. 6일 오후 12시30분쯤 서울의 한 지하철역 역무실에 찾아가 임산부 배지를 달라고 했더니, 역무원은 ‘여긴 재고가 없다. 근처에 있는 다른 역에 가보라’고 안내했다.
역무원이 안내한 근처 역에 가서 배지를 요청했더니 역무원은 별도의 질문이나 확인 절차 없이 ‘임산부 배지’를 꺼내줬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배지를 요청하는 시민들에게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배포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캠페인 차원에서 하는 것일 뿐 배지가 어떤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임산부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요청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