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낮 최고기온이 15도를 넘는 완연한 봄 날씨였던 지난 20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도심의 한 공원에 놀러 나온 4~5세 어린이들이 연신 기침을 했다. 야외 활동을 나온 인근 숲유치원 원생들이었다. 이날 광주는 미세 먼지가 '나쁨' 단계로, 하늘은 뿌연 잿빛이었다. 30대 교사가 마스크를 답답해하는 아이들에게 "벗지 마세요"라고 주의를 줬지만, 아이들은 "마스크를 써도 목이 가려워요"라고 불평했다. 이 유치원 교사 강모(34)씨는 "요즘 미세 먼지 때문에 걱정이 너무 많다"며 "야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우리 유치원에 온 아이들을 매일 실내에만 붙잡아 놓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의 숲유치원‘청계산숲자람터’원생들이 청계산 숲 속에서 야외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미세 먼지 예보가‘나쁨’인 날이 잦아지고 있는데, 교육 당국이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유치원 재량에 맡기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청계산숲자람터’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대기질 측정차량을 배치하고 매시간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숲 속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봄철 '불청객'인 미세 먼지 때문에 야외 활동에 특화된 '숲유치원'들이 고민에 빠졌다. 숲유치원은 '생태교육'을 표방하며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공원이나 숲에서 진행하는 유치원이다. 한국숲유치원협회에 가입한 숲유치원 수는 700여 곳으로 지난 1년 만에 100곳 이상 증가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워낙 인기가 좋아 최근에는 일반 유치원도 숲유치원을 표방해 '숲반'을 개설하는 추세다.

하지만 미세 먼지가 심한 요즘, 야외 활동을 실내 활동으로 대체하는 기준은 숲유치원마다 다르다. 본지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있는 숲유치원 20곳에 문의했더니, 절반 이상인 12곳은 미세 먼지가 심각했던 지난 20일과 21일에도 예정대로 야외 활동을 진행했다. 반면 8곳은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

숲유치원 측은 "교육 당국이 미세 먼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교육부는 미세 먼지가 150㎍/㎥ 이상일 때만 야외 수업을 강제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미세 먼지 '매우 나쁨' 수준으로, 이 같은 상황이 2시간 이상 지속되면 미세 먼지 주의보가 발령된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자주 발생하는 미세 먼지 '나쁨(81~150㎍/㎥)' 단계에서는 뚜렷한 기준이 없는 상태다. 교육부는 '나쁨' 단계를 두 구간으로 나눠 농도가 81~99㎍/㎥일 때는 '예보 상황 수시 확인', 100~150㎍/㎥일 때는 '야외 활동 자제'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숲유치원 측은 "미세 먼지 예보가 '나쁨'일 때는 유치원보고 알아서 결정하라는 뜻"이라며 "교육부가 애매한 표현을 써서 책임을 유치원에 떠넘긴 것"이라고 했다.

숲유치원들은 "모호한 규정 때문에 미세 먼지 '나쁨' 예보가 내려도 야외 활동을 취소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원장 재량으로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가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외 활동 취소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견은 자주 갈린다고 한다.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에 맞서, "숲은 도심에 비해 공기 질(質)이 좋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숲유치원 학부모 최모(33)씨는 "미세 먼지가 걱정돼 학부모회의에서 실내 수업을 건의했더니, 다른 학부모들이 '이기적이다'고 무안을 줘서 놀랐다"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미세 먼지 속에서 자연스럽게 면역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학부모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는 "비싼 돈을 받고 왜 자꾸 실내 수업만 하려 하느냐"고 항의한다고 한다. 숲유치원의 학비는 월 30만~50만원으로 일반 유치원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비싸다. 야외 활동 비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서울 한 숲유치원의 교사 양모(26)씨는 "학부모들 등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숲의 공기가 도심보다 깨끗하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성모병원 이진국 호흡기내과 교수는 "어린이는 면역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미세 먼지에 노출될 경우 기관지염, 폐렴 등 호흡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숲유치원

숲유치원은 독일의 유아교육학자 프리드리히 프뢰벨의 "어린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게 하라"는 교육사상에 따라 운영되는 유치원을 말한다. 실내 활동보다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흙과 나무 등을 만져보는 체험을 중시한다. 2010년 서울·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