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재정 '기획예산처' 거시·금융·세제 '재정경제부' 분리안 부각
각 대선캠프 표면적으로는 손사레 치지만 주판알 튕기고 있어
19대 대통령 선거일까지의 기간이 40여일 가량으로 좁혀지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는 차별되는 국정운영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정부조직개편 계획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실패가 비효율적인 정부조직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이 정부조직개편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정부조직개편의 핵심은 기획재정부의 기능 분산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출범한 기재부는 예산과 세제, 경제정책, 정책조정, 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등 정부 경제정책의 기능을 모아놓은 공룡부처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 국정은 기재부가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권한이 막강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국무조정실은 기재부 출신이 장관을 맡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등도 기재부 출신이 차관을 맡으며 안살림을 챙기고 있다. 기재부에 집중된 기능과 힘을 분산시켜야 조화롭고 균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 민주당 일각·국민의당 기재부 분리안에 공감대

30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소모임인 '더좋은미래'가 주최한 '2017년 이후의 대한민국: 대선 핵심 아젠다'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기재부 분리안의 구체적인 얼개가 드러났다. 더좋은미래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캠프에서 금융정책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김기식 전 의원이 주도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더좋은미래가 제시한 정부조직 개편안은 ▲경제부총리제 폐지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로 분리 ▲행정혁신처 및 지방자치분권위원회 신설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기능을 과학기술부·산업혁신부·기후에너지부 등으로 재편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통합 후 노동 전담부처 별도 신설 ▲교육부 축소 또는 폐지 및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국민안전처의 국민안전부로 승격 등이 주요 골자다.

이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 분리안이다. 더좋은미래안은 기획예산처는 예산·국고·재정기획·공공정책·미래정책 등 예산 및 중장기 계획을 담당하고, 재정경제부는 세제·경제정책·정책조정 등 정책기획 기능과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정책을 관장한다. 국내금융정책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게 되면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정책을 관장하며 금융감독원을 실행기관으로 관리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참여정부 모델로 기재부를 재편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더좋은미래는 현재의 기획재정부를 유지할 경우는 국제금융을 금융위원회로 이관시켜 금융부로 확대하는 방안도 2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경우 외환정책 수립책임을 거시정책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역할로 규정한 외국환관리법과 상충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되기 어려운 방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국제금융은 거시경제정책의 하위 수단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산업 증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금융위에 맡길수 없다”면서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을 합쳐서 금융부를 만들자는 발상은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당은 아직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기획재정부의 기능 분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예산과 재정기획, 공공정책 등을 관장하는 기획예산처를 만들고 거시정책 등 정책기획, 국제금융, 국고, 미래정책, 정책조정은 재정경제부에 맡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이 경우 국내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로 이동시키고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된다.

◆대선캠프, 정부조직 논의에 소극적

하지만, 각 대선캠프에서는 정부조직개편에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정권을 잡은 후 즉각적인 정부기구 개편에 나서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후보 측은 정부조직 개편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고, 안희정 후보측은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여론 수렴을 미루겠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캠프의 홍종학 정책본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기본적인 원칙은 정부조직 개편은 최소화한다는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고 물어보시는데, 오늘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유일하게 공약한 것은 중소벤처기업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활성화 정책을 내놓는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 외에는 (정부조직 개편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안희정 캠프 정책 총괄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도 “정부 조직개편에 적폐청산의 관점이 과하다. 교육부 폐지론 등 징벌적 차원의 주장이 일부 있는데 타당하지 않다”며 “정부조직 개편을 차기 정부가 들어서고 바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개헌에 들어가는 핵심적 국가 책무에 따라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의 역할이 조정될 수 있다”며 “정부조직 역할은 개헌에 들어가는 내용을 고려해서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표면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각 당 경선이 마무리되고 대선 본선이 시작되면 기재부 분리 등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수면위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각 캠프의 유불리 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대선이 본격화되면 정부조직개편 구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