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미결(未決) 상황이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23일 오전 8시(현지 시각) 전국 6만7000여 곳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프랑스 언론은 투표 하루 전날에도 "4명의 후보가 역사상 유례없는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며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2위가 다음 달 7일 결선투표에서 최종 승자를 가린다.

프랑스 언론은 통상 오후 8시(한국 시각 24일 오전 3시) 투표 종료와 동시에 출구조사를 발표했지만 이번엔 발표 시각을 상당히 늦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간 르몽드는 "투표 마감 즉시 결선 진출 후보 2명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했다. 현지 한 외교 소식통은 "투표 종료 직후 결선 진출자를 발표하는 게 프랑스 언론의 전통이었고, 그 발표가 실제 결과와 틀린 적도 없었다"며 "이번에 그 전통이 깨질 수 있다"고 했다.

23일(현지 시각) 진행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 후보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중도신당‘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극우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중도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좌파당의 장뤼크 멜랑숑.

프랑스 대선이 대혼전 양상을 보이면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전 세계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영국 BBC는 "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이어 프랑스에서 EU 탈퇴를 주장하는 마린 르펜 극우 국민전선 후보와 극좌 정당 연대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결선에 동시 진출한다면 세계 자유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프랑스가 EU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유럽이 숨을 죽인 채 투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투표 직전 판세는 중도 신생 정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근소하게 1위를 달리는 가운데, 르펜과 멜랑숑,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이 4~6%포인트 안팎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오독사가 21일 유권자 953명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에서 마크롱이 24.5%로 가장 높았고, 르펜(23%)과 피용·멜랑숑(각 19%)이 뒤를 이었다. 같은 날 BVA 조사(1494명 대상)에서는 마크롱과 르펜이 23%로 공동 1위, 멜랑숑(19.5%)과 피용(19%) 등 순이었다.

마크롱이 지난 14일 이후 24번의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선두를 빼앗긴 적은 없지만, 그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르펜 지지자 중 "투표 날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85%에 달한 반면, 마크롱은 70%에 그쳤다. 피용도 79%로 높은 수준이었다. 피용은 충성도 높은 보수 중도 지지층을 바탕으로 "선거 당일 역전을 이뤄낼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정치권에선 30% 안팎에 이르는 부동층 표심이 결과를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와 피뒤시알이 유권자 28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 27%에 달했다. 오독사 조사에선 30%였다. 일간 르피가로는 "지난 2012년 대선 1차 투표 때 투표율은 79.5%였고, 2007년엔 83.8%였다"면서 "이번 투표율이 전후 최저였던 2002년 기록(71.6%)보다 더 낮아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신문은 "지난 1월 이후 지금까지 한 번 이상 지지 후보를 바꾼 사람이 10명 중 6명에 달한다"며 "유권자들의 변심이 당락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최악 후보를 막기 위해 차선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로 투표율이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낮 12시 현재 투표율은 28.5%로 2007년(31.2%)에 비해선 낮지만 직전인 2012년(28.3%)보다 약간 높았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는 프랑스 유권자 4700만명이 등록했다.

영국 BBC는 "선거 막판 발생한 경찰관 총격 살해 사건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발생한 총격 테러 직후, 세계 주요 언론들은 테러와 이민 등 이슈에서 강경 입장을 밝힌 르펜과 피용의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파리에서 만난 은행원 스테파니 고데(39)씨는 "테러는 이전에도 있었고,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테러를 막을 순 없을 것"이라며 "유럽연합(EU) 탈퇴와 경기 불황 등에 관한 공약을 보고 이미 후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테러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국 투표소에 5만명의 경찰과 7000명의 군 병력, 저격수도 배치했다. 프랑스가 국가 비상사태하에서 대선을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