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嫌惡) 정서에 대한 반기입니다."
최종화 시청률 18.4%(닐슨코리아)로 종영한 드라마 '김과장'(KBS2)엔 '절대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전북 군산에서 '삥땅'치며 살던 경리과장 김성룡(남궁민)은 한탕 횡령하러 TQ그룹에 입사했다가 사내 불의에 맞서는 '의인'으로 거듭난다. "대놓고 쓰레기로 살겠다"며 TQ그룹을 '법꾸라지'로 만들려던 검사 출신 회계이사 서율(준호)은 회장 박헌도(박영규)의 1000억원대 비자금을 고발하는 김과장의 조력자로 변모한다.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김과장' 작가 박재범(47)씨를 만났다. 드라마는 3월 말 종영됐지만 명대사를 모아 정리한 책 '김과장 직장백서'(아우름)가 최근 출간돼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박씨는 "김성룡이 개과천선했듯 사람은 늘 선하게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동국대 영문학과 90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연극영화학을 부전공했다. 연출 배우러 들어갔다가 '연기'에 빠졌다. "대학 때 '서울의 달'을 방영했어요. 한석규·최민식 같은 선배들이 학교로 찾아와 연기술을 알려주곤 했죠."
1998년 최종 5명을 선발하는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출품했다가 6등으로 떨어졌다. "공모전 담당했던 CP에게 전화가 왔어요. '재능이 아까우니 덤으로 붙여주겠다'고 했죠."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쓰고 연출한 단편영화 '씨어터'(2000)가 그의 입봉작. 드라마는 2002년 KBS 드라마시티 단막극 '팬티모델'로 출발했다. 이듬해 서울대 법학과 정원미달 일화를 다룬 단막극 'S대 법학과 미달사건'을 쓰고서 잠시 드라마계를 떠났다. 영화 시나리오 4편을 썼지만 번번이 엎어졌다.
반전이 된 작품은 드라마 '신의 퀴즈'(OCN)였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사체를 조사하는 법의관의 삶을 다룬 드라마로, 2년간 준비해 2010년 '신의 퀴즈 시즌1'을 방영했다. '신의 퀴즈' 시즌2·3·4와 '굿닥터'(KBS)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의드신(神)'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의학 드라마(의드)는 인간의 생명·존엄성 같은 무거운 주제를 변주하는 작업이라 극화하기 좋은 장르예요. '신의 퀴즈' 집필하면서 취재해둔 기록을 그다음 작품에 녹여내다 보니 연달아 의드를 집필하게 됐죠." 포털 사이트에 '작가 박재범'을 검색하면 '의사 박재범'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그는 "법의학자 혹은 외과의사 출신이라는 건 루머"라며 웃었다.
'김과장'은 "인간에게 들이댔던 메스를 사회에 대고 싶어 집필했다"고 했다. 밑그림은 2015년 12월쯤 홀로 군산 여행을 하면서 그렸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였던 초원사진관을 방문했다가 만난 한 남성이 계기가 됐다. "'○○기공'이라는 점퍼를 입은 남성이 '웽~' 하는 굉음을 내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김성룡의 모습이 딱 겹쳐져 보였죠." 이날 카메라에 담아둔 군산 골목들은 '김과장' 1·2화의 촬영지가 됐다.
차기작도 코미디다. '김과장' 집필이 끝나자마자 구상에 들어갔다. "'김과장' 쓸 때 이런 목표가 있었어요. 한 회당 웃음 다섯 번, 박장대소 한 번을 드리면 성공이다. 정통 코미디로 그려질 다음 작품도 시청자들 '정신 건강'에 이로운 이야기로 찾아 뵐 계획입니다." 박 작가가 김성룡처럼 호탕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