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니를 굽기 위해 사람을 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쓰기 위해 브라우니를 굽는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15㎞쯤 떨어진 용커스 시에 있는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의 모토다. 1982년 설립된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하루에 14t의 케이크를 생산해 연간 1800만달러(약 21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제과업체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창구 창문에 '열린 채용 정책(Open Hiring Policy)'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전과, 노숙, 마약 사용 등 과거에 저지른 일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장벽이 있더라도 일자리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이 가난의 굴레를 끊고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잔잔한 물결이 되게 할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왼)미국 뉴욕주 최초로 B코퍼레이션 인증을 받은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의 직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오)지난해 9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트리오포스은행에서 유럽 내 B코퍼레이션 기업 60개 돌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안내를 맡은 케리 세실 매니저에게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고 말을 걸자, "리스트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돌아가 기다리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이나 인종 같은 항목은 적을 필요가 없었다. 세실 매니저는 "지금 일하고 있는 160명 가운데 50명 정도는 해마다 이런 방식으로 충원한다"며 "일하려는 의지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만 있으면 누구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B lab.

세실 매니저는 "그만두는 사람이 있거나 추가로 채용할 일자리가 생길 때 충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채용이 되려면 6개월에서 1년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입사하면 곧바로 급여를 받으며 직업훈련을 받게 되고, 충분히 숙달된 후 공장에 투입된다"고 말했다. 지금도 160명 직원 중 절반은 직업훈련을 받는 견습직원이었다.

"취직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생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묻자 세실 매니저는 "그들이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수익금을 공장 인근에 있는 그레이스톤재단에 기부하고 그레이스톤재단은 530여호의 임대 주택과 어린이집, 텃밭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런 자격 요건을 보지 않고 채용한 사람들이 충분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가스텔 부사장은 "우리 회사도 다른 제과업체와 경쟁해 좋은 품질과 생산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자선사업처럼 회사를 운영하지는 않는다"며 "거의 모든 직원은 다른 업체에 절대 뒤지지 않는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자동화설비도 충분히 갖추고 있고, 일할 의지를 보이지 않거나 규율을 어기는 직원은 해고하기도 한다.

회사 경영을 정부나 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레이스톤의 경영보고서를 보면 2014년 수입은 1800만달러였고, 이 중 정부기여금과 기부금은 각각 7% 정도였다.

(왼)그레이스톤 베이커리의 직원들 모습 (오)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제품들.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2년간 복역한 후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에 취직한 디온 드루는 최근 간부로 승진했다. 그는 "가족과 은행계좌, 자동차, 집 그리고 건강까지 모두 합법적으로 갖게 됐다"며 "회사 직원들이 모여 우리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다시 교도소 감방에 함께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할 때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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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지난 2008년 뉴욕주에서는 최초로 B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 인증을 받은 회사다. 미국에서 B코퍼레이션 운동은 확장되는 추세다. B코퍼레이션이란 "사업을 선(good)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모토대로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투명한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을 뜻한다.

미국에서 B코퍼레이션 인증을 받은 회사는 1200개를 넘어섰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처럼 사회적 기업 성격이 강한 기업도 있고,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버려진 책을 모아 판매한 수익으로 문맹 퇴치 활동을 전개하는 '베러월드북스', 친환경 우유를 이용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벤앤드제리 등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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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B코퍼레이션은 아직 초기 단계다. B코퍼레이션 인증 기업은 빈곤층에 보청기를 지원하는 딜라이트보청기, 가계 부채 문제를 상담하고 금융 지원을 하는 대부업체 '희망만드는사람들', 서울시 나눔카 서비스 공식 사업자 '쏘카' 등 3개 정도이다.

카셰어링 쏘카에 전기차 테슬라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인증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 훨씬 일반화돼 있다.

B코퍼레이션과 사회적 기업의 차이점을 들자면, B코퍼레이션이 기업 활동에 무게중심을 두고 공익을 추구한다면 사회적 기업은 공익성에 좀 더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이익을 내며 버티기 어려운 기업도 많이 포함돼 있어 정부나 공공 부문이 지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업은 1970년대에 자립이 힘든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태동했고, 1990년대 들어 정부 지원이 본격화했다. 우리나라는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됐다.

고용노동부장관이 인증한 사회적 기업에는 국공유지 임대 지원,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세제 혜택,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4대 사회보험료와 1인당 월 77만원 인건비를 제공하고 있다. 2007년 55개에 불과했던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은 지난해 말 1713개로 30배 이상 규모로 증가했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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