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만난 김한나(43)씨는 검은 참수리 문양이 찍힌 스티커 한 묶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상사의 아내다. 스티커에는 'PKM 357'이라는 문구도 있다. 남편이 탔던 '참수리급 고속정(PKM) 357호'를 뜻하는 차량용 스티커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노란 리본'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물건은 쉽게 보기 어려운 현실에 가슴 아팠어요.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02년 6월 29일, 김씨는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잃었다. 그날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해군 357정에 기습 공격을 가했다.

우리 해군은 북한군 30여명을 사살하고 NLL을 지켰지만, 참수리호가 바다에 가라앉고 장병 6명이 전사했다. 당시 한 상사는 357정 조타장이었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조타실을 떠나지 않았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제2연평해전 15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씨가 참전 용사들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제작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스티커에는 당시 북한의 기습 공격을 받았던 참수리 357호정을 의미하는 ‘PKM 357’과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날을 뜻하는 ‘2002 06 29’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연평해전 부상 용사, 콜라 한 병 훔치다]

당시 6용사는 전사(戰死)가 아니라 순직(殉職)한 것으로 처리됐다. 당시 법은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 2004년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전히 '공무 중 사망'으로 기록돼 있다. 2002년 영결식에는 당시 대통령은커녕 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씨는 "나라를 위해 목숨 잃은 분들을 돌보지 않는 나라에서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2005년 미국으로 떠났다가 3년 뒤 돌아왔다.

미국에서 김씨는 '군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체험했다. 동네 공원에서도 그 마을 출신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차량에는 '해병 전역자(Marine Veteran)'처럼 군(軍)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스티커가 흔히 붙어 있었다. 그는 "미국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고 자랑스러워하는 문화가 생활 속에 배어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여태껏 정부에 '이걸 해주세요'라며 싸웠지만 이제는 시민들에게 '함께해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기리는 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지 않으면, 애국자가 금세 잊히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첫걸음으로 '연평해전을 잊지 말자'는 스티커 1000장을 사비로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차량이나 휴대전화에 붙이고 일상 속에서 용사들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디자인은 참수리호에서 복무했던 해군 예비역 중위 최정혁(34)씨가 "희생한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재능 기부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참전 용사 가족이나 지인 등에게 스티커 500여장을 나눠줬다. 슬슬 소문을 타서 김씨 페이스북에 "스티커 받으려면 어떻게 하나요" 같은 글이 올라온다. 차량에 스티커를 붙인 '인증샷'도 50여장 올라와 있다. 김씨는 "여전히 용사들을 기억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고마운 마음에 조만간 커피 기프티콘이라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15년 동안 느꼈다"고 했다. 2015년에 영화 '연평해전'이 흥행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때 잠시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고 몇 달만 지나도 바로 관심이 식은 걸 체감했다.

29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리는 제2연평해전 15주년 기념식에는 6용사 유가족과 참전 장병, 해군 관계자 등 350여명이 참석한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의원 각각 3명을 제외하면 참석 의사를 밝힌 정·관계 주요 인사는 없다. 해군 관계자는 "작년부터 매년 3월에 정부 주관으로 '서해 수호의 날'을 따로 기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