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는 최근 무협지 작가들이 제출한 고소장이 한 달 평균 100건 이상 들어온다. 대상은 개인 간 파일 공유프로그램(P2P)인 '토렌트'에서 무심코 소설 모음집을 주고받은 사람들이다. '토렌트'는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영화·게임·소설 등의 콘텐츠를 주고받는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저작권 위반'이라는 죄의식 없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은 '토렌트 소설 모음집'에 자신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며, 네티즌들을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하는 것이다.

경찰 공식 집계에 따르면, 무협지 작가 4명이 접수한 고소장은 2015년 한 해 동안 1만4187건에 이른다. 같은 해 전체 저작권법 위반 사건 3만8334건 중 37%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은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고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법무법인은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토렌트에서 불법 유통되는 작가들의 소설을 모니터링한다. 그리고 작품이 포함된 소설 모음집을 내려받고 올리는 IP주소들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개인 간 파일 공유프로그램 '토렌트']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IP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원이 드러난다. 작가들과 변호사들이 이 사람을 상대로 고소장을 내는 식이다. 이후 무협 소설을 무단으로 내려받았다며 접촉한다. 합의금을 받고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소당한 사람들에 따르면 작가들은 합의금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100만원까지 깎아주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한다.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서로 오라"며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강행한다. "1000여 명을 상대로 한꺼번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수억원을 챙긴 경우가 있다"고 경찰 측은 밝혔다. 보통 무협지 소설은 전자책(e-book)으로 권당 3000~4000원 정도 한다. 경찰은 "저작권 보호가 목적이면 게시물 삭제 등의 조치를 먼저 하는 게 일반적인데, 고소부터 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했다.

고소당한 사람 중에는 청소년과 대학생이 많다. 이들은 '토렌트 소설 모음집'을 내려받고 올렸지만, 그 속에 고소한 작가의 작품이 포함돼 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안에 많게는 작품 수백 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작권이 있는 작품을 불법으로 주고받은 만큼, 합의를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무협지 작가들의 잇따른 고소에 회원 수만 15만명에 달하는 저작권 관련 카페에는 경찰 조사·재판 후기와 서면 답변서 작성 요령 등이 수백 건씩 공유되고 있다. "내일 조사받으러 가는데 조언을 구한다"며 도움을 청한다.

무협지 작가들이 고소한 사건은 고소당한 사람의 거주지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하게 된다. 수사관 1명당 많게는 20건까지 떠안는 경우가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느라 다른 수사를 할 여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작가들이 제출한 고소장이 지금까지 2만장에 육박하자 경찰은 지난해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저작권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청소년 전과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작권위원회 측은 "저작권 침해의 재산 피해가 경미한 경우, 형사 소송 대신 즉결심판(경미한 범죄에 대해 하는 약식 재판)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토렌트(Torrent)

개인 간 파일 공유 프로그램(P2P)의 일종. 하나의 파일을 여러 조각으로 분산시켜 놓고, 다수의 사용자에게 조금씩 정보를 나눠 받아 하나로 합치는 방식이다. 동영상 등이 짧은 분량으로 흩어져 돌아다니기 때문에, 불법 콘텐츠 단속에 잘 걸리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수백만명이 토렌트로 영화·게임·도서 등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