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우리은행 일본 동경지점 대출금 7억원 부실 책임을 놓고 우리은행과 백 모 전 부행장이 벌인 소송에서 소형로펌 법무법인 하나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상대로 압승했다. 당시 동경지점장으로 근무했던 백 전 부행장을 대리한 하나는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변호사 총 9명의 소형 로펌이다. 김앤장은 우리은행을 2심부터 대리했다.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권기훈)는 지난달 14일 백모 전 우리은행 부행장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개인 통장에서 예금 등을 못찾도록 지급정지하고, 가압류한 것이 부당하다며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우리은행이 백 전 부행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우리은행은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중구 우리은행 본사

2014년 KB국민은행 동경지점장이 2010~2013년 일본 회사에 천억원대 불법대출을 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건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자,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을 검사하면서 6개 시중은행에 대해 자체 검사지시를 내렸다. 이중 2010년 11월 승인한 대출에 문제가 있다고 금감원에 신고했다. 당시 우리은행 동경지점장이 백 전 부행장이었다. 이에 금감원은 2015년 6월 백 전 부행장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리라고 우리은행에 요구했다.

금감원이 징계를 요구한 시점은 백 전 부행장이 퇴직한지 5개월이 지난 뒤였다. 우리은행은 백 전 부행장이 고의로 부실대출을 해줬다며 손실보전조치로 백 전 부행장에게 지급하기로 한 이연성과급 1억4000만원의 지급을 보류했다. 또 백 전 부행장의 개인 예금 2억원에 대해서도 지급 정지했다. 우리은행은 보너스격인 이연성과급을 성과평가 대상연도의 3년 후에 지급하고 있다.

백 전 부행장은 “30년 동안 근무한 은행이어서 예금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퇴직한 직원의 예금을 무단 조회하고 예금 2억원과 보험 등을 임의로 지급정지했다”며 “우리은행의 지적사항은 일본에서 일어난 대출에 대해 국내 규정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일 뿐 대출이 불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우리은행도 회수하지 못한 7억5000만원(7500엔) 중 5억4000만여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 김앤장, 소형로펌 하나 상대로 패소

우리은행 1심 대리인은 율촌이 맡았지만 패소했다. 우리은행은 패소하자 백 전 부행장이 예금을 찾지 못하게 공탁금을 걸고 즉시 항소하면서 대리인을 김앤장으로 바꿨다.

백 전 부행장은 1심 승소를 근거로 2016년 12월 우리은행이 지급 정지한 개인 예금 가압류에 대한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그는 “임의 지급 정지에 대해 항의하자 우리은행이 가압류를 신청했고, 이에 정식 소송을 통해 1심에서 승소했다”며 “그런데도 우리은행은 개인을 상대로 공탁금을 걸어 돈을 못찾게 하고 국내 1위 로펌까지 선임해 압박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지난 4월 백 전 부행장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김앤장은 법원의 가압류 결정 취소에 대한 효력정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법원은 기각했다. 가처분 소송에서 연이어 패한 김앤장은 항소심에 집중했다.

김앤장은 “백 전 부행장이 업무용 시설물 구입에 대한 대출은 운영 자금 대출과 달리 대출받은 사람이 아닌 대출 용도에 맞게 건물을 파는 사람 계좌에 입금해야 하는 내부 규정을 어겼다”고 강조했다. 대출시 건물을 사고 파는 문서를 제출하지만 서류가 위조되거나 매도인과 매수인이 짜고 대출을 받아 다른 용도로 대출금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김앤장은 일본의 한 회사가 대출받은 1억5000만엔 중 8463만3000엔을 부동산 매도인이 아닌 대출받은 회사에 지급한 것은 매도인과 매수인이 대출금을 유용할 의도로 대출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김앤장은 백 전 부행장이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담보물을 과대평가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앤장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은행 검사역 A씨를 증인으로 세웠다. A씨는 “동경지점을 검사한 결과 백 전 부행장 등 역대 동경지점장 등이 모두 대출 브로커, 감정평가사와 유착해 부당대출을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사 보고서와 진술이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백 전 부행장이 대출브로커에게 3%의 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며 “A씨가 검사 과정에서 백 전 부행장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부당 대출에 대한 구체적 조사 결과에 대한 내용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앤장 박순성(왼쪽), 주학준 변호사

가처분부터 2심까지 김앤장의 박순성(56·사법연수원 15기), 주학준(37·42기)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1989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한 뒤 2005년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16년 동안의 판사생활을 마치고 김앤장에 합류했다. 주 변호사는 2013년 법무법인 세종에서 변호사를 시작해 2014년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 하나, 김앤장 주장 대부분 선방

백 전 부행장은 법무법인 하나의 이영재(59·16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고려대 법학과 출신인 이 변호사는 198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변호사를 시작해 30년 동안 송사를 주로 다뤘다.

이 변호사는 대출 당시 문제가 없었던 대출이 결과적으로 일부 회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대출을 최초로 승인한 임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김앤장의 공격을 방어했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은행 여신감리부도 대출 실행에 대한 동경지점의 판단을 수긍한 점 ▲후임이 부임한 이후에도 2013년 11월까지 대출의 회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지속한 점 ▲대출 취급 이후 5년 간 후임자가 2차례 대출을 연장해 주면서 본부 승인을 받은 점 등을 들었다.

이 변호사는 “금감원 검사 결과에는 ‘부동산 취득용 대출금의 부당지급’으로 지적됐을 뿐 ‘담보물 과대감정평가에 의한 대출’로는 지적받지 않았다”며 김앤장 주장을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은행 내부 규정에서 업무용 부동산 취득자금을 대출하는 경우 매도인의 예금 계좌에 입금하도록 한 것은 원칙 일뿐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출 당시 매도인과 매수인이 합의함에 따라 대출금 중 일부가 대출 당사자에게 지급됐고 이와 관련해 민원이 제기되지 않은 점도 강조했다.

하나 이영재 변호사

재판부는 이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우리은행 지적에서 과대평가된 감정평가서를 얻기 위해 감정평가사와 사전협의 또는 의뢰하는 등의 행위를 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0년 감정평가액과 2014년 감정평가액의 차이가 크다는 김앤장의 주장에 대해 이 변호사는 “건물의 노후화, 지진 발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2010년 11월 2억2000만엔에서 2014년 4월 가격조사에서 1억7100만엔으로 줄어든 것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건물의 노후화 등을 고려하면 감소폭이 이례적으로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회수곤란 또는 회수불능이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대출결정을 내린 임원에게 미회수금 손해 등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해야 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금융기관이 직원들의 변상책임에 관해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만 적용한다는 취지”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