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동산에 자리한 서울 은평구 통일로 불광근린공원(13만345㎡)에 고대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 서 있다.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에서 골목을 따라 10여분간 걷다 보면 나타나는 은평구립도서관이다. 산 중턱에 있는 좌우대칭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 외관은 차가우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을 품은 '석양의 신전'
은평구립도서관은 2001년 10월 8013㎡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총 면적 5060㎡)로 문을 열었다. 설계는 '건축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곽재환 건축가가 맡았다. 그는 서향인 데다가 경사로라는 부지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우선 서쪽으로 큰 창을 많이 냈다. 해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고 '석양의 신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서관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과 2002년 서울시 건축상 은상을 받았다.
자연과 이질적인 듯한 이 건물은 의외로 곳곳에 빛과 바람, 하늘을 담고 있다. 도서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우물이 대표적이다. 비가 오면 물이 차고, 반영정(反影井·그림자를 비추는 우물)이라는 이름처럼 하늘의 풍경을 품는다. 건축가는 이곳을 "고요히 자신의 내면 풍경을 비추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도서관 가장 위층에 있는 석교(石橋)는 불광근린공원과 연결된다. 지금은 안전 문제로 폐쇄됐다. 도서관은 내년 보수 공사를 해 다시 개방할 예정이다.
◇다문화 열람실로 특성화
도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다섯 돌기둥을 지나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면 어린이·다문화자료실을 만난다. 은평구립도서관은 2002년부터 어린이자료실 안에 다문화자료실(145㎡)을 운영한다. 어린이들이 다문화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책과 외국어로 표기된 한국 동화책, 외국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표기된 동화책 등 3700권의 다문화 관련 서적을 비치하고 있다. 중국어가 727권으로 가장 많다. 영어(340권), 일본어(455권), 베트남어(295권), 필리핀어(132권) 순이다. 지난주 도서관을 찾은 남지현(12)양은 "주변의 다른 도서관보다 외국어로 된 책이 많아 자주 온다"고 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다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아에게 해외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너나들이 책 읽기', 각국의 그림과 언어로 만드는 북아트 작품 만들기,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만드는 다문화 요리 교실, 다문화 이주민 학부모가 진행하는 중국어 교실 등이다. 최나영 은평구립도서관 사서는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어 아이들이 다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1층에는 성인 종합자료실, 2층에는 디지털자료실과 정기간행물실이, 3층에는 총 420석 규모의 열람실 3개가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인터넷 홈페이지(www.eplib.or.kr)에서 회원 가입을 한 뒤 도서관을 방문해 신분 확인을 하면 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이곳을 포함해 9개의 은평구 공공도서관에서 대출 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은평구립도서관에선 '제14회 은평도서문화축제(12~17일)'가 진행 중이다. 어린이열람실에는 볼풀장이 설치됐으며, 주말에는 투호놀이, 사방치기 등 전통놀이 체험부스가 들어선다. 단청 컵받침 만들기, 위인 얼굴이 담긴 책갈피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