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국제부 차장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릴 때마다 "헤어져 사는 아픔 누가 알랴"로 시작해 "통일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로 끝나는 노래 '우리 민족끼리'를 연주한다. 60~70년 만에 만난 혈육이 다시 생이별하는 순간에 나오는 노래다. 남한의 90세 노모는 북한의 70세 딸을 붙들고 "내가 60년 전에 널 버렸는데, 또 널 버리고 가는구나"라며 통곡한다. 그 울음소리는 "6·15 햇빛 넘친 삼천리강산 (중략) 세우자 부강 조국 우리 민족끼리"라는 노랫말에 묻힌다. "우리 민족끼리 뭘 어쩌자는 거냐, 누구 때문에 또 이별인데"라며 땅을 치던 한 이산가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북한만큼 '민족' 타령을 하는 집단도 없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한 '대남 일꾼'은 "북한 핵은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북한 핵 무력과 남한 경제력이 손잡으면 우리 민족은 세계 최고가 된다"고 했다. 민족을 공멸로 내몰 수 있는 핵 개발조차 '민족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북의 '우리 민족끼리'가 치밀한 적화통일 전략인 반면 우리 안의 좌파 세력은 민족 얘기만 나오면 감상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폭주해도 "북한이 핵·미사일을 같은 민족인 남한을 향해 쏘겠느냐, 대미 협상 카드일 뿐"이라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편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 내부에 분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민족을 써먹었다. 지난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공동선언문 첫머리에 '북과 남은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를 넣은 것도 대남 전술의 일환이다.

북한이 새로운 '선전화'를 공개하며 '자주통일 공세'를 펼쳤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2016년 18~21일 매일 한개씩 '자주통일'을 주제로 하는 선전화를 공개했다.

["미국 위협받으면 북한 완전 파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완성을 앞둔 북한이 다시 민족을 내세우는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 대외 선전 매체 아리랑은 11일 "현 위기 상황에서 남조선이 살 길은 세계적 군사 대국으로 올라선 우리 공화국과 뜻과 힘을 합치는 길뿐"이라며 "외세와 결별하고 민족의 편에 서라"고 했다. 같은 날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 조선신보도 "문재인 정권은 '우리 민족이 먼저다' 하는 자세가 아니라 상전인 트럼프의 충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세 배격'을 주장하는 북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지금 북한은 핵·미사일을 카드 삼아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한다.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의 핵심은 주한미군 철수다. 협상장에서 북한이 "미군이 떠나야 우리 민족끼리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떠든다면 우리 좌파들도 박자를 맞출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미사일을 쏴도 우리는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세우는 근거도 '우리 민족끼리'다. 그러나 5000만 민족을 '핵 인질'로 만든 게 김정은 집단이다. 미국과의 '핵 담판'에서 남한은 빠지라는 게 그들이다. '우리 민족끼리' 대화만 하면 모든 게 풀릴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