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로서 에너지가 거의 바닥날 만큼 경기필에 열과 성을 쏟았습니다. 해마다 다른 목표를 성취하려 애썼고, 단원들도 잘 따라줘서 거듭 성장할 수 있었기에 강렬한 시간입니다."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만난 성시연(42)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2014년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 예술단장으로 경기필에 취임해 화제를 모았던 그는 오는 12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연주회를 끝으로 경기필을 떠난다.
말러 전문가인 성시연은 지난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경기필과 함께한 말러 교향곡 9번 연주회를 사실상 마지막 무대로 여기고 지휘대에 올랐다. "10년 전 보스턴 심포니에서 부지휘자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이 곡이 파고들었어요.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승 롤프 로이터가 막 돌아가신 때라 이별에 대해 생각이 많았죠. 말러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이 음악이 이별의 메시지와 겹쳐져서 내가 사랑하는 경기필과의 마지막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예고와 취리히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성시연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로 옮겨 지휘를 전공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07년 보스턴 심포니 137년 역사상 첫 여성 부지휘자로 위촉돼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2009년부터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다. 선 굵고 박력 있는 지휘로 소문난 그가 몸담은 지난 4년, 경기필은 연주력 뛰어나기로 소문난 악단으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 수장을 맡은 게 처음이었던 그는 임기 초 삼성의 모 임원과 밥 먹는 자리에서 성과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분은 '함께 가라!' 딱 한 말씀만 하셨어요. 내칠 생각 말고 포용하라고요." 감사하게도 그는 지휘자로서 경력이 초반부터 술술 풀린 사례다. 거의 첫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했고, LA 필하모닉과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 유명 악단을 객원 지휘했다. 처음엔 자신을 '여성' 지휘자로 받아들인다는 걸 깨닫고 불편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휘는 약육강식의 세계. 남자든 여자든 자기만의 한 가지를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나도 나만의 장점을 찾아 영리하게 뚫고 나가야겠구나 절감했죠."
성시연은 "경기필에 있으면서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파악했다"고 했다. "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에요. 제 고집대로 음악을 밀고 나간 측면이 있죠. 근데 단원들과 교류하면서 즐길 여유가 이젠 생겼어요." 그는 40대에 '백수'가 되는 거지만 두렵지 않다고 했다. "독일에서 처음 지휘를 배웠으니 익숙하지만 맹수들 우글거리는 유럽으로 돌아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성시연과 경기필은 특유의 거칠고 터질 듯한 사운드를 토해내며 1500석 공연장을 구석구석 누볐다. 진정한 사랑은 비통한 내면에서 제대로 영그는 법. 악단은 말러가 겪은 이별의 고통과 절망을 마지막까지 쏟아낸 후, 희미한 바이올린 선율로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