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신임 국립중앙의료원장에 전남 순천의 현대여성아동병원 정기현〈사진〉 원장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4일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주 이뤄진 국립중앙의료원 신임 원장 심사 이사회에서 정 원장이 3인의 최종 후보 중 1순위 후보자로 뽑혔다. 임명권자인 복지부 장관은 대개 1순위 후보자를 원장으로 지명한다. 정 원장이 사실상 국립중앙의료원장에 내정된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사회는 복지부·교육부 등 4개 중앙 부처 차관급 인사가 다수를 이룬다. 정 원장은 이들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국내 대표적인 공공 의료 기관으로 200여 지방의료원과 국공립 의료 기관의 사령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국가 감염병 중심 병원 기능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또 오는 2022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할 계획이 잡혀 있고 그곳에 대규모 종합병원, 국립외상센터, 감염병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정 원장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에서는 "식약처장은 동네 약사가 하고, 국립의료원장은 동네 병원장이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원장은 국가 중심 의료 기관을 맡아 운영하기에는 전국 규모의 공공 의료 경영과 업무 경험이 일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부산에서 동네 약국을 경영한 경력이 식품의약 관련 이력의 전부나 마찬가지여서 임명 당시 전문성 논란이 일었다. 현대여성아동병원은 의사 14명, 병상 수 100여개인 중소규모 병원이다.

정기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당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더불어 포럼'을 창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정 원장을 잘 아는 한 의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정 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부부 동반 식사를 할 정도라는 친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전북대 의대를 나온 소아과 전문의로 학창 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사전에 정 원장 경력 만들기를 도운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신임 원장 공모 마감을 3일 앞둔 지난달 17일 복지부는 공공보건의료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정 원장과 권덕철 복지부 차관에게 공동 위원장을 맡겼다. 위원으로는 여러 의대 예방의학 교수와 성남시 의료원장 등이 들어갔다. 공공 의료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 다른 민간 의료 기관은 하나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의 소규모 민간 병원장을 복지부 차관과 함께 공동 위원장직에 맡긴 것이다.

정 원장은 공동 위원장을 맡으면서 "공공 보건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는 건강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정 원장이 (한때) 보건소장도 하고 전남 지역에서 공공 의료 관련 활동과 자문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안팎에서 정 원장 내정을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이참에 '정권 인사'가 와서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