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겨울 스포츠의 제전인 동계올림픽은 '눈과 얼음의 축제'다. 이 말대로면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려주면 올림픽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눈밭 위에서 펼쳐지는 스키·스노보드 등 설상 종목 선수들과 경기장 운영자들은 내리는 눈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자연설은 경기 진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눈밭 스포츠가 눈을 꺼리는 '스노 패러독스' 현상인 셈이다. 왜 이럴까.
◇자연설 가고 인공설 오라
자연설에 가장 민감한 종목은 속도로 경쟁하는 알파인 스키다. 내년 2월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선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수퍼대회전 경기가 열린다. 여자 알파인 스키 역대 최다승(77) 기록 보유자인 린지 본(33·미국)이 초강세를 보이는 종목이다. 알파인 스키 중 속도가 가장 빠른 활강의 경우 선수들이 시속 120㎞ 이상 스피드로 슬로프를 내려온다.
일반 스키어들에게 '축복'인 자연설이 선수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건 너무 푹신푹신하기 때문이다. 결정체가 8각형에 가까운 자연설은 눈 입자의 부피가 크고, 입자와 입자 사이 빈틈이 많다. 그래서 밟으면 푹 들어가면서 스키가 눈에 파묻히는 경우가 많다. 속도를 내거나 회전하기 어렵게 된다.
실제 자연설 위에서 무리하게 스피드를 내면 방향을 틀기 어려워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고, 코스에서 벗어날 경우 펜스에 부딪쳐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경기 직전 자연설이 내리면 모두 걷어내야 대회를 진행할 수 있다. 인공눈은 결정체가 원형에 가깝고 입자가 작아 스키가 덜 파묻히므로 자연설보다 방향 조정이 쉽다. 기록도 인공설이 잘 나온다.
◇오대천 물로 만드는 올림픽 스노
평창 조직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정선에 올림픽용 눈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13일 현재까지 작업이 약 53% 진행됐다. 경기장 제설 작업은 내년 1월 15일 끝나게 된다. 정선의 눈은 경기장 앞을 흐르는 오대천에서 물을 끌어 만든다. 조직위 관계자는 "오대천 물은 흙이나 불순물이 없는 청정수여서 인공눈 만들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했다. 끌어올린 물은 일단 경기장 피니시 지점(베이스)에 설치된 담수호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쓴다. 정선 경기장엔 인공눈이 총 130만t 투입될 예정이다. 필요한 물의 양은 83만t 정도다. 경기장 관리자들은 12만8000t이 들어가는 담수호에 통상 5만~7만t을 모아놓고 쓰며 하루 제설 작업을 한 후 약 9000t을 다시 채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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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수호의 물은 '쿨링타워'라는 냉각 장치를 거쳐 온도를 2~3도까지 낮춘 뒤 제설기로 보낸다. 슬로프 위의 고정식 제설기 90대와 이동식 30대가 물을 직경 0.8㎜의 노즐로 뿜어낸다. 이게 순식간에 얼어버리면서 인공눈이 된다. 인공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사실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에 가깝다. 자연설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인공설은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하루의 제설 작업은 그날의 기상 조건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영하 2~3도는 돼야 인공눈이 생성되고, 습도도 75%를 넘어가면 안 된다. 경기장 직원 87명은 언제 온도가 내려가고 습도가 적당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 체제로 근무 중이다. 10월 말 제설 작업에 투입된 심정섭(31) 매니저는 "밥을 먹다가도 제설이 가능한 날씨가 되면 바로 일을 시작한다. '5분 대기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선 직원들은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예쁜 쓰레기가 오는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뿌려 놓은 인공눈 위에 자연설이 쌓이면 곧바로 투입돼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에서 자연설은 선수도, 관리자도 환영하지 않는 '공공의 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