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는 유벤투스(세리에A 통산 우승 33회)의 연고 도시 토리노, AC밀란(18회)과 인터밀란(18회)이 버티고 있는 밀라노만큼 축구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탈리아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에고 마라도나(57·아르헨티나)가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나폴리는 마라도나와 함께 세리에A 우승 2회(1987·1990), UEFA컵 우승(1989) 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유벤투스나 AC밀란 등 부유한 북부 팀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던 만년 중하위권팀을 이탈리아 최고 클럽으로 끌어올린 마라도나를 나폴리 시민들은 신(神)처럼 떠받들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4강전이 공교롭게 나폴리에서 열렸는데, 당시 일부 나폴리 팬은 마라도나가 뛰는 아르헨티나가 조국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올라가자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요즘도 나폴리 지역엔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시는 '마라도나교(敎)' 신자들이 있다.

온몸 문신에 독특한 헤어스타일까지….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반항아일 것 같지만, 마렉 함식은 소속팀 나폴리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다. 오른쪽 사진은 함식이 팀 개인 통산 최다 골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까지 이 부문 최고였던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 모습.

'나폴리의 영원한 신화' 마라도나를 기록상으로 넘어선 선수가 나왔다. 이름 때문에 국내 팬들에겐 '함식이'로 통하는 나폴리 미드필더 마렉 함식(30·슬로바키아)이다. 함식은 24일(한국 시각) 삼프도리아와 벌인 세리에A 홈경기에서 2―2로 맞선 전반 38분 골망을 가르며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로 함식은 나폴리에서만 116골(478경기)을 터뜨리며 마라도나가 가진 나폴리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115골·259경기)을 갈아치웠다. 함식의 활약에 힘입어 나폴리는 승점 45(14승3무1패)로 세리에A 선두를 지키고 있다. 유벤투스(승점 44)에 승점 1 앞서는 아슬아슬한 리드다. 나폴리가 마지막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은 마라도나가 뛰던 1990년이었다. 나폴리 팬들은 함식이 28년 만에 정규 리그 우승 트로피를 선사할 것을 기대한다.

마라도나가 가진 상징성을 뛰어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함식 역시 '의리남'으로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2007년부터 나폴리에서 뛴 함식은 11시즌 동안 478경기를 소화하며 나폴리 개인 최다 출전 기록(주세페 브루스콜로티·511경기) 경신도 눈앞에 두고 있다.

뛰어난 득점력과 날카로운 패스, 왕성한 활동량을 갖춘 함식은 그동안 돈다발을 내세운 빅클럽의 구애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하지만 모히칸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는 아래와 같은 대답으로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돈이라면 머리를 세울 왁스 값만 있으면 된다. 나폴리 유니폼은 나의 피부와 같다."

AS로마에서만 25시즌을 뛴 스타 토티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 함식의 희망이다.

함식은 슬로바키아 축구의 레전드이기도 하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슬로바키아 캡틴으로 팀의 16강행을 이끈 그는 작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도 맹활약하며 슬로바키아를 16강에 올려놓았다. 유감스럽게도 내년 러시아월드컵에선 슬로바키아가 탈락해 함식의 모습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