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군사도로를 우회해 방남(訪南)한 김영철 일행은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을 제외하고는 돌아갈 때까지 숙소인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방남 첫째 날 회담이 새벽까지 이어지자 북한 대표단은 국정원 직원들과 호텔 16층 패밀리룸에서 함께 담배를 피웠다. 대부분의 식사는 16층 ‘클럽 라운지’에서 해결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동팀이 입수한 호텔 문건을 바탕으로 김영철의 2박3일 일정을 재구성했다.
◇방남 첫째 날(2월 25일) "새벽에 국정원 직원들과 패밀리룸에서 흡연하심"
25일 오전 11시 40분 김영철을 태운 검은색 제네시스 EQ900 차량이 워커힐 호텔에 접어들었다. 김영철 일행은 호텔 한식당 '온달'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3시15분 특별편성 된 KTX열차를 타고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했다. 평창 일정을 소화하고 김영철이 숙소로 돌아온 것은 자정을 넘긴 12시 20분쯤. 취재진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한마디 해달라"고 물었지만 김영철은 대답 없이 빠른 걸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다.
▲김영철이 26일 오전 12시 20분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로 돌아왔다. 김영철은 전날 평창행(行) 특별열차를 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진부역에서 특별편성 KTX열차를 타고 숙소에 돌아갔다. 이날 광진서 5개중대(1중대당 70명) 이외에도 서울청에서 경찰 인력이 투입돼 총 350명이 경비를 섰다. /이다비 기자
공식일정은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김영철 일행은 이 호텔 16층 라운지에서 우리 측과 새벽 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다. 워커힐 호텔 '야근조 국가행사 특이사항' 문건은 이 상황을 "16층 라운지는 행사 관계자들이 계속 사용 예정" "26일 새벽에도 국정원 관계자, 북측 관계자 패밀리룸 사용. 흡연하심"이라고 묘사했다.
북한 대표단은 스위트룸으로 구성된 이 호텔 17층을 통째로 빌렸다. 심야에 북측이 통일부가 상황실을 꾸린 16층으로 내려왔고, 실무자들은 패밀리룸에서도 따로 모여 비공식적으로 접촉했다는 얘기다.
워커힐 호텔은 전 객실이 금연이다. 투숙객은 1층 로비로 나와 100m가량 떨어진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 흡연이 적발되면 퇴실할 때 약 25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북측 관계자들은 취재진 노출을 피하고자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운 것으로 보인다. 흡연 벌금은 따로 부과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새벽엔 객실을 바꾼 것으로 기록돼있다.
문서에 따르면 26일 오전 2시 50분쯤 1512호 객실 이용자는 "팬코일(냉난방 시스템) 소음이 심하다"며 객실 교체를 요구했고, 같은 층인 1522호로 방을 옮겼다. 문서는 "큰 컴플레인(불평)은 안 하심"이라고 적고 있다. 이 호텔 15층은 국가정보원이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방남 둘째 날(2월 26일) "모든 일정 취소, 호텔서 머물 예정"
26일 김영철은 호텔 안에서 칩거했다. 호텔 측은 "26일 모든 일정 취소되어 호텔에서 계속 머물 예정"이라고 썼다. 당국은 당초 이날 김영철 일행을 위해 잠실 제2롯데월드 또는 하남 스타필드로 '나들이' 계획도 세웠지만 여론을 의식해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우리 고위관료들이 줄줄이 호텔을 찾았다.
김영철 일행은 이날 17층(조식), 1층(중식), 16층(석식)에서 식사를 했다.
문건에 따르면 북측은 26일 오전 9시 1700호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메뉴는 따로 적시되지 않았다. 점심은 호텔 1층 중식당 '금룡'에서 먹었는데, 금룡은 오후 2시 30분까지 외부 손님을 받지 않았다. 북측 인사들은 16층 라운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워커힐호텔 16층 클럽 라운지는 한강과 아차산 전망을 양쪽 전면 통유리로 볼 수 있다. 호텔의 BQT(Banquet·연회) 직원이 올라와 서비스했다고 적혀있다.
호텔 측은 일반 투숙객들이 북한 대표단과 접근하지 못하게끔 애썼다. 문서는 “(16층) 데스크 앞 자동문, 객실키 터치로 오픈 가능”하다고 썼다. 다른 층 객실 이용자가 객실키를 이용해 16층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는 의미다.
이 문서에는 ‘16층 클럽 데스크 26일 06:30 이후로 Close(닫힘)’라고 적혀있다. 25일 호텔 야근조가 26일 아침 근무조와 교대할 때 전달할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클럽 전화 프런트로 수신전환, 팩스 전환 필요, 클럽 데스크 서랍 및 사무실 잠금 필요, 26~27일 이틀간 상품권, 각종 패키지 쿠폰, 현금 보증금, 환전실적명세서, 클럽 USB 등등 본관 프런트로 이동”이라는 대목도 있다. 호텔 내부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게끔 16층 VIP용 프런트에 있는 자료를 1층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방남 셋째 날(2월 27일) "객실요금은 우선 담당 부서에서 설정해 놓은 대로 해 놨음."
정부는 워커힐 호텔 17층을 25~27일 2박3일간 통째로 빌렸다. 이 호텔 17층에는 총 7개의 객실이 있다. 모두 스위트룸 이상이다. 26일 북측 인사가 모여 아침 식사했던 1700호는 이 호텔에서 가장 비싸고, 단 하나밖에 없는 최고급 객실이다. 워커힐 호텔이 공시한 요금표에 따르면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의 하룻밤 숙박비는 700만원이다.
문서는 김영철 일행의 숙박비에 대해 "객실요금은 우선 담당 부서에서 설정해 놓은 대로 해 놨음. 매니저가 추후 정리해서 다시 요청 준다고 함"이라고 적었다.
정부는 김영철 일행에 들어간 경비를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디지털편집국 기동팀이 이들의 일정을 근거로 비용을 추산한 비용은 7180여만원이다.
두문불출하던 김영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7일 오전 10시 30분쯤이었다. 그는 우리 정부가 마련한 방탄차량을 타고 파주 통일대교로 향했다. 이들은 통일대교 상행도로가 자유한국당의 기습시위에 막히자 하행도로로 약 1km 역주행한 뒤 북한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