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로수길의 명물 핑크색 닛산 피가로 차량이 사고로 반파된 모습. 사고를 낸 아반떼 차량은 그 뒤로 벤츠, 포르셰 등 7대를 더 들이받아 피해 금액만 5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가로수길 명물 '핑크붕붕이'가 생명을 다했네요."

지난달 25일 오후 인스타그램에 박살난 자동차 사진 수십 장이 올라왔다. 서울 강남의 관광 명소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사진 촬영용 랜드마크'로 통하는 핑크색 닛산 피가로 자동차였다. 일본 닛산 자동차에서 1991년 출시한 이 차는 2만 대만 한정 생산된 것으로 복고풍 디자인에 귀여운 외양으로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가로수길의 핑크색 닛산은 이곳에서 영업 중인 한 치과의사 소유다. 치과 홍보를 겸해서 항상 같은 곳에 주차돼 있는 차라서 행인과 관광객들이 그 옆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하면서 명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 25일 오후 5시 30분쯤 아반떼 차량을 운전하던 20대 남성 A씨가 이 차를 들이받았다. 차량 주인인 치과의사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며 차량 뒷부분이 완전히 부서진 사진을 올렸고, 수천명의 사람이 "가로수길 명물이 사라졌다", "범인 꼭 잡아달라"는 등 댓글을 남겼다.

사고를 조사한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이 핑크색 닛산차를 받은 뒤에도 계속 운전을 해 추가로 7대를 더 들이받았다. 벤츠 S클래스, 포르셰 마칸, BMW 3시리즈, 푸조 등 외제차 5대와 스타렉스, 시내버스 등이었다. 경찰은 "가로수길이 양방향 1차선 도로인 데다 사고 당시 정체 상태였다 보니 연이어 많은 차를 들이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고로 부상당한 사람은 없었고, 운전을 했던 A씨만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고 직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고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목격담도 하나둘씩 올라왔다. 한 목격자는 "가해자가 핑크차를 박살낸 뒤 뺑소니를 치면서 포르셰, 벤츠 S클래스 등 외제차 6대를 더 들이받아 수리비만 15억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글을 올렸다. 이 목격담이 마치 사실처럼 인터넷에 퍼지면서 "가해자,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 망했다"는 등 동정 댓글까지 올라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리비 15억원은 부풀려진 이야기"라고 밝혔다. 닛산 피가로를 포함, 피해 차량 8대의 정확한 피해 견적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피해 차량 중에 폐차해야 할 정도로 망가진 것도 닛산 피가로와 푸조 1대 등 2대 정도라고 한다. A씨는 대물 피해 한도가 3억원인 자동차 보험에 가입해 있고, 그 금액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만 배상하면 된다. 수리비나 폐차 및 보상 가격, 과실 비율 등을 고려하면 가해자가 물어내야 할 돈은 최대 5억원 정도 될 것이라는게 경찰과 보험사의 추정이다. 그렇다고 하면 A씨는 한도를 넘는 금액 2억원은 자비로 물어내야 한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사고 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던 걸로 드러났다. 다만 혈중알코올농도가 0.01%로 면허 정지 수준(0.05%)에 이르진 않았다. 경찰은 "혈중알코올농도 수준만으로는 심각한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보이지만, 사고 당시 정황이나 뺑소니쳤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사 입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