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를 선택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보가 부족하고 다녀온 사람들이 드물어 떠나기 전까지 발을 동동 구른다. 잠시 주저할 수는 있지만, 멈출 필요는 없다. 막상 떠나면 그만큼 보상도 충분한 것이 낯선 여행지의 매력.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이완된다. 기대 이상의 힐링을 만끽하는 재미도 크다.
Day 1 인천-쿠시로
일본 북해도(北海道) 남동부에 있는 '구시로(釧路)ㆍ쿠시로'를 찾았다. 슬슬 몸을 힘들게 하는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곳에서 잠시 멈추고 싶었던 참이다. 쿠시로는 연중 시원한 기후로 한여름 평균 기온이 18도에 불과하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10도 정도이며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하니 아무래도 여행의 적기는 지금이다. 몇 번이나 다녀온 북해도는 익숙하지만, 쿠시로라는 지명은 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 아무래도 초면에 친해지기 위해서는 뻔뻔함이 필요할 듯싶다. 쿠시로는 일본 최대의 습원지로 유명하다. 식물군락과 초원, 숲, 생물들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두루미의 고장이기도 하다. 쿠시로는 규모가 너무 커 한 번에 보기는 어렵다. 곳곳에 들어선 숲과 나무, 습지가 한가득 시야를 녹색으로 채운다. 쿠시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습원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온네나이 비지터 센터(쿠시로 습원 산책로)'다. 전망대와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 각 산책로의 소요시간은 대략 30분에서 1시간 미만이다. 아침 일찍 센터를 찾아 한가로이 걷다 보면, 이슬에 젖어 녹음이 물씬 나는 갈대, 사초, 물이끼, 오리나무숲, 다양한 꽃들을 비롯해 오색딱따구리 같은 야생조류와 두루미까지 만날 수 있다. 그저 산책을 나왔을 뿐인데, 맑은 공기, 쾌청한 하늘과 함께 그림 같은 하루를 선물 받는 기분이다.
Day 2 굿샤로 호수-이오잔-시레토코
일본 최대의 칼데라호(caldera lake)인 '굿샤로 호수'는 마법이 깃든 호수로 불린다. 모래를 파면 곧바로 뜨거운 온천이 나오고,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아 백조들이 거주하기 때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호수를 사람들은 종종 바다로 착각할 정도다. 호수 입구에 들어가 발로 모래를 살짝 눌러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발가락 끝에서부터 슬슬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천천히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서 '이오잔'으로 출발했다. 이오잔은 '유황산'이란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도착 즉시 매케한 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땅속에서 분출된 유황이 산 여기저기에 노란 흔적을 남기고, 지열로 계란을 익힐 수 있으며 유황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곳. 살짝 무섭지만 가까이 다가가 바위 앞에 앉아 사진을 찍어본다.
쿠시로에는 명소가 즐비하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시레토코오호는 시레토코 국립공원 내에 있는 다섯 개의 호수로 각 호수에 개별 이름은 없고 각각 1호, 2호, 3호, 4호, 5호로 불린다. 특히 산책길과 전망대에서 보는 호수의 풍경은 시레토코 팔경의 하나로 꼽히는데 신비스럽고 아득하다. 호수 주변으로 고가도로 형태의 나무 데크 길이 설치돼 있어 원생림과 호수를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진한 녹색의 산들과 바로 옆의 원생림의 풍경이 마치 수채화로 그려놓은 듯 아름답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유빙이 떠내려와 더욱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시레토코에서는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야생동물들이 길에서 종종 목격되기 때문. 물론 산과 호수를 지키는 주인은 그네들인 만큼 여행자가 조심하고 예의를 차리는 것은 필수다. 그럼에도 이 녀석들은 너무 한다. 길 가운데를 막고 앉아 자기 발로 태연하게 얼굴을 터는 여우나 곰의 모습에서는 저절로 실소가 터져 나온다.
Day 3 고시미즈-아바시리
'고시미즈'라 불리는 해안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 오호츠크 해로부터 바람을 타고 날아온 야생 꽃씨가 모래 언덕에 터를 잡아 천연 화원이 조성된 곳이다. 얌전한 비닐 화원 속 꽃들이 아니라, 억센 해풍을 견디며 자라난 색색의 꽃과 풀들은 모양새와 향기 모두 어딘가 묵직하다. 특히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는 6월 중순부터 7월 하순은 여행 적기다.
꽃 구경을 끝내고 나면 '아바시리'를 방문하자. 아바시리는 이색적인 박물관을 운영하는 지역으로 현지에서도 많은 학생이 견학 차 찾는다. 유빙 박물관(오호츠크 유빙관), 감옥 박물관, 북방민족 박물관이 모두 아바시리에 있다. 과거 아바시리의 겨울은 눈이 많고 추운 데다 오지였기 때문에 중앙에서 유배를 온 정치범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치범들이 수용됐던 감옥은 현재 박물관으로 바뀌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명소가 됐다. 오호츠크 유빙관은 겨울에 해안가로 떠내려오는 유빙들을 일 년 내내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둔 곳이다. 유빙을 눈으로 보고 직접 손으로 만지다 보면, 자연스레 겨울에도 오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
Day 4 아칸 호수
모든 여행은 처음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바쁨이 미덕인 서울과 달리 쿠시로는 천천히 걷고 천천히 호흡할 수 있는 쉼표 같은 여행지이다. 시간이 가는 게 아쉽기만 한 이 여행지의 훌륭한 맺음을 위해 '아칸 호수'를 선택했다. 아칸 호수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관광지 중 하나다. 유람선을 타고 드넓은 호수를 유랑하면서 주변에 있는 산과 숲, 나무 등의 자연을 보는 일은 질리지 않는다. 특히 아칸 호수에는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담수성 녹조류의 일종인 '마리모'가 산다. 동글동글, 작은 공처럼 생긴 모양이 귀여워 관상용으로도 판매하는 만큼 기념품으로는 제격이다. 공항에 가기 전 출출하다면, 쿠시로 시내에 있는 어시장 '와쇼이치바'에 들리자. 구시로 근방 해안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과 건어물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으로 아쉬움에 가득 찬 눈과 배를 동시에 채울 수 있다.
일본
비자 90일 무비자 가능
비행시간 약 2시간 40분
시차 한국과 동일
공용어 일본어
화폐 엔화(JPY, 100JPY=975.68원)
전압 110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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