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리비아식’이라는 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킨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보유하고 있던 모든 핵 프로그램을 넘겨줬는데도 미국이 현지 반군과 손잡고 정권을 무너뜨린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카다피는 미군 등의 폭격을 피해 달아나던 중 반군에 붙잡혀 살해됐다.
카다피의 죽음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세습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핵을 포기한 결과로 카다피가 맞이한 최후를 그가 잊었을 리 없다. 실제로 김정은은 카다피의 죽음을 두고 리비아의 군비축소가 실수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계관, 최선희 등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맹비난하는 강수를 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다음 달 싱가포르에서 꺼낼 해결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의 지위를 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7일(현지 시각) NBC방송에 출연해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원한다”며 “이를 통해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카다피의 죽음으로 끝난 ‘리비아식 해법’…백악관서는 北 대입 놓고 ‘혼선’
리비아식 핵무기 해법은 사실 카다피가 사살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주목받은 ‘성공 사례’였다. 리비아는 2003년 핵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후 관련 시설과 자료를 공개하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화학무기 사찰을 허용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리비아와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었다.
특히 미국은 리비아가 갖고 있던 핵무기 제조 관련 서류와 장비 25톤을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 연구소로 옮겨 완전한 핵폐기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미국은 이 과정을 시작한 2004년 대(對)리비아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했고, 리비아는 이듬해인 2005년 10월 핵 프로그램을 전부 폐기했다. 현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북한에 주장하는 ‘선(先)폐기 후(後)보상’의 시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리비아식 해법’의 의미를 두고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약속하고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구체적인 방법과 보상을 논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돌연 ‘카다피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올해 4월 취임 후 줄곧 방법론적인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13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서도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오크리지로 가져가 직접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 1부상이 그를 실명 비난하며 리비아식 해법은 가당치 않다고 비판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있다. 볼턴 보좌관은 어디까지나 비핵화 ‘방법’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의 발언이 있은지 사흘만인 지난 17일 그가 고려하는 리비아식 해법이 독재정권 전복에 초점을 뒀다는 것을 암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우리는 리비아를 초토화하고 카다피를 학살했다”며 “(비핵화)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리비아) 모델이 발생할 것이지만 합의한다면 김정은은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 비핵화 합의 불발시 얼마든지 리비아식 해법의 ‘살아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여기에 펜스 부통령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리비아처럼 끝날 수 있다”며 북한과 카다피 정권의 전복 과정을 대놓고 비교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2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 출연해 이 같이 밝히고 ‘위협처럼 들린다’는 지적에 “위협이 아니라 사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시인하기까지 했다.
펜스 부통령의 도발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강도높은 비난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로 이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통보한 지난 24일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리비아 모델과 관련된) 오해가 많다. 이는 재빠르고 결단력 있는 외교적 노력을 뜻한다. 카다피가 죽은 것은 관련 협상이 끝난 뒤인 2011년”이라고 주장, 미·북 관계의 잔불을 살리려 애썼다. 핵무기와 관련 물질 등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만을 ‘리비아 모델’로 봐야 하며 추후에 발생한 정권 붕괴를 이와 엮는 것은 곡해라고 해명한 것이다.
◇ 무게 실리는 ‘파키스탄식 해법’…“김정은, 핵보유국 지위 원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는 등 미국이 또 한번 ‘당근’을 내밀면서 미·북 정상회담은 다시 재개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리비아식 해법을 도입할지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27일 열린 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대서특필하면서도 김정은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약속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 대해선 여러 번 밝혔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북·미 간에 협의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북한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라크식 해법’도 북한에게는 리비아식 해법만큼이나 끔찍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정권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북한이 노리는 것이 ‘파키스탄식 해법’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파키스탄처럼 핵은 보유하되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키스탄이 핵 개발에 돌입한 건 1974년 5월 18일 잠재적 적국 인도의 핵실험 직후다. 당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는 “인도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풀을 뜯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파키스탄은 이후 쿠데타 등 수차례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도 핵개발만은 중단하지 않고 전폭 지원했다.
그 결과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28일 핵실험에 성공하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핵과학자회보(BAS)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파키스탄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130~140개이며, 2025년쯤에는 그 수가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은 이밖에도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 F-16 전투기, 단거리 전술시스템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이 인도를 이유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이 한국을 들먹여 핵을 보유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미닉 티어니 미 스와스모어대 정치학교수는 26일 미 시사지 ‘애틀랜틱’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파키스탄과 북한이 각각 인도와 한국이라는 강력한 경쟁국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인도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 이후 대(對)파키스탄 침공을 줄였다.
티어니 교수는 파키스탄과 북한이 무기 개발 분야에서 서로 협력해왔다는 점도 강조했다. 파키스탄과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재래 무기를 거래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을 지지하는 등 비공식적인 동맹 관계를 맺어왔다. 2006년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북한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전수하고 파키스탄은 핵공학자 압둘 카디르 칸의 인맥을 통해 북한에 핵기술을 양도했다.
무엇보다 핵보유로 인해 파키스탄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다. 파키스탄은 현재 핵무기를 가진 유일한 무슬림 국가로 이슬람권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 역시 파키스탄의 핵보유 이후 파키스탄을 ‘정중히’ 대우하고 있다.
티어니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대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국제군축노력의 일환’이라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은 기아를 감수하고 핵무기를 개발했다”며 “북한이 동아시아의 또다른 파키스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