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의 유력 언론들이 북한의 핵 은폐 의혹을 우려하는 보도를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내놨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 국방정보국(DIA)이 최근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에 나서는 대신 핵탄두 보유 개수와 관련 장비·시설을 숨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NBC 방송도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이 북한이 최근 몇 달 동안 핵무기 제조를 위한 농축 우라늄을 증산하고 있으며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김정은과 쌓은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은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속이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김일성은 1994년 카터 전 미 대통령을 만나 핵 개발을 동결하겠다고 했고, 김정일은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 미사일 발사 실험을 더 이상 않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이후 6차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쳐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다. 북한은 늘 앞에서는 비핵화를 약속하고 뒤에서는 핵 능력을 키워왔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김정은도 똑같은 기만 전술을 쓰려 하고 있다. 미 정보기관들이 북핵과 관련된 기밀 사항을 언론에 알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이런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고 "북한의 핵 위협은 사라졌다"는 낙관론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북 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위해 오는 6일 평양을 방문한다.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한을 상대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물질·시설에 대한 신고를 받고 그 진위를 따지기 위한 검증을 약속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은 전쟁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 분위기를 크게 바꿔 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덕담을 나누고 호감을 느꼈다고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북한이 완전히 핵을 내려놓아야 진짜 평화가 이뤄진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에서 김정은으로부터 핵 폐기와 그에 대한 검증 절차를 약속받아야 한다. 그제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큰소리를 쳐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