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1심 재판의 핵심 쟁점은 박 전 대통령이 받은 특활비 36억5000만원이 뇌물인지 여부였다. 뇌물죄는 액수가 1억원 이상이면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는 중범죄다. 검찰이 이 사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것도 뇌물죄 성립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전직 국정원장들을 그 자리에 앉혀준 대가로 특활비라는 형태의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는 20일 "뇌물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이 임명 대가로 대통령에게 사례 내지 보답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과거부터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자금을 지원하는 관행이 있었고, 대통령도 국정원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생각으로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했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은 '임명 대가'가 아니라 관행의 측면이 컸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은 특활비 36억5000만원 중 34억5000만원은 국고 손실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국정원 특활비는 대북 정보 수집 등 국정원 고유 업무 수행에 쓰여야 하는 국가 예산인데 이와 무관한 곳에 지출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고 손실이라고 판단한 금액 중 대부분(33억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서 추징하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통해 이른바 '진박(眞朴)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이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들이 총선 공천을 받기 유리하도록 여론조사 등을 하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친박 다수 당선'이라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계획적·능동적으로 (당내 총선) 경선에 관여했다"고 했다. 이날 법정 방청석을 가득 채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두 사건을 합해 총 징역 8년이 선고되자 "인민재판을 중단하라"며 고함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국정 농단 사건 1심 재판부의 구속 연장 결정에 반발해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 및 공천 개입 사건에선 검찰 수사부터 응하지 않았고, 재판 역시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선고 직전인 오후 1시 30분부터 두 시간가량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접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선고 직후 구치소 직원에게 쪽지로 결과를 전달받았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고 했다. 그는 "목 디스크가 심해 뵐 때마다 통증을 호소해 안쓰럽다"고 했다. 최근엔 운동은 거의 하지 못하고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검찰이 재판부의 뇌물죄 무죄 판단에 반발해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박 전 대통령 항소 여부와는 관계없이 2심 재판은 열릴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국정 농단 사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징역 8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총 32년간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구속돼 이미 약 1년 4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사면(赦免)되지 않을 경우 올해 66세인 박 전 대통령은 97세에 출소하게 된다.
한편 이날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 농단 사건 2심 결심(結審) 공판에서 검찰은 1심 구형량과 같은 징역 30년 및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24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