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인 그는 서울과학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에 들어갔던 집안의 자랑, 고2 때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타고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과학 수재였다. 거칠 것 없는 앞날을 누릴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운명이었을까. "대학에서 합창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그해에 음대생 멤버가 없었어요." 동료들은 피아노를 좀 치고 악보도 볼 줄 알았던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얼떨결에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레퀴엠'을 지휘했는데 마지막 연습 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쏟았어요. 음악이 사람을 뒤흔드는구나!" 공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편입해 지휘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쳤다. 내친김에 미 커티스음악원과 템플대로 유학 가 바닥을 더 조였다.

지휘자 백윤학(43·영남대 기악과 교수·사진)이 3~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필름 콘서트 '스타워즈 인 콘서트: 새로운 희망'을 이끈다. 클래식 공연장에 초대형 스크린을 걸고 1977년 개봉작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을 전편 상영하는 가운데, 그와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영화 속 사운드 트랙을 라이브로 되살리는 무대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같은 영감을 떠올린 사람만 음악을 하는 줄 아는데 사실 음악은 레고 놀이와 비슷해요. 블록 수백 개를 펼쳐 놓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블록을 모티브로 제시한 다음 맞물리는 블록들을 계속 끼워나가며 상상한 결과물을 만드는 거죠."

근엄한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여타 지휘자들과 달리, 그는 라벨의 '라 발스' 같은 왈츠 음악을 지휘할 땐 발레리노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쇼스타코비치 '축전' 서곡처럼 힘찬 곡을 할 땐 두 팔을 몸에 착 붙이고 짧게 통통 뛴다. '율동이 예쁜 지휘자님'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제가 느낀 음악은 뜨겁고 강렬한데, 지휘자는 엄숙하게 있으면서 연주자들한테만 신나게 하라고 지시하면 그 맛이 살까요?"

"지휘자는 화학으로 치면 '촉매'"라고 그는 말했다. "여기 악보를 보세요. 바이올린부터 팀파니까지 온갖 악기가 다 있는데, 지휘자는 없어요. 악기들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음악을 만들곤 사라져 버리는 촉매와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