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우리 꽃 미남 아니에요. 성적이 좋으니까 잘 봐주시는 거죠."
펜싱 남자 사브르 국가대표팀 김정환(35), 구본길(29), 김준호(24), 오상욱(22). 요즘 세계 대회를 금빛으로 휩쓰는 남자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 네 명을 팬들은 'F4'라 부른다. '꽃(Flower)보다 아름다운 펜싱 선수 4명'이란 뜻이다. 본인들은 그 별명만 꺼내면 쑥스러워한다. 지난 2일 강원 홍천종합체육관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겸 대통령배 펜싱 대회장. 선수 300여 명이 북적대는 체육관 안에서도 그들은 단박에 눈에 띄었다. 깎아놓은 밤톨처럼 말끔한 얼굴로 피스트(펜싱 코트) 위를 날아다니며 칼을 휘둘렀다.
◇K팝 저리 가, K펜싱 나가신다
'F4'는 실력과 외모 면에서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룬다. 태극마크를 10년 이상 달며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다 우승한 그랜드슬래머 김정환과 구본길은 영화 '무간도'에 나오는 배우처럼 중후한 멋을 자랑한다. 반면 '무서운 후배' 김준호와 오상욱은 아이돌 가수 뺨치는 싱그러운 매력을 뽐낸다. 김준호가 '컴퓨터 미남' 계열이라면, 오상욱은 순하게 자란 아들 부잣집 막내 느낌이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지는 훈련을 소화하면 따로 관리를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게 이들이 밝힌 피부 관리법이다.
F4 인기는 세계로 뻗는다. 단체전 금메달을 딴 지난 7월 중국 세계선수권에서도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펜싱협회 관계자는 "상욱이는 프랑스·러시아 등 유럽 팬들이 자국 선수 대신 응원을 보낼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준호는 한류스타처럼 사인 공세에 시달렸다. 덕분에 'K-팝' 못잖은 'K-펜싱'이란 얘기까지 들었다"고 귀띔했다.
◇외모도, 실력도 '판타스틱 4'
실력이 없다면 'F4'란 별명도 무의미하다. 남자 사브르대표팀은 2016년부터 국제대회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아시아에선 이미 적수가 없고, 펜싱 강국인 프랑스·헝가리도 넘어선 세계랭킹 1위인 '펜싱계의 드림팀'이다.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도 한국의 금메달 2개를 이들이 만들었다.
구본길은 사브르 대표팀의 장점에 대해 서로 다른 플레이스타일이 최고의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환이 형은 공격 타이밍을 엇박자부터 느린 박자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유럽형 스타일이고, 저는 공격 범위가 깊어요. 키가 큰 상욱이는 체격 조건이 좋아 팔 뻗는 길이부터 다르고요. 준호는 스피드가 뛰어납니다."
'이기는 습관'의 대물림도 유럽 텃세를 뚫고 승승장구하는 비결이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멤버 중 원우영과 오은석이 은퇴하면서 한동안 세대교체로 삐그덕거렸다. 베테랑 김정환과 구본길이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술과 경험을 전해주면서 대표팀의 성적도 본 궤도를 찾았다. 맏형 김정환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따고 은퇴하려 했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하면 어렵게 캐놓은 금맥이 끊기겠단 생각에 다시 뛴다"며 "나와 본길이가 갔던 길을 후배들도 가도록 힘닿는 데까지 밀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준호와 오상욱은 "형들 하는 대로만 하면 올림픽 금메달도 꿈이 아니다"라고 든든해했다. 형들의 노하우를 쑥쑥 빨아들이며 훌쩍 큰 동생들은 월드컵과 그랑프리 등 국제대회 개인전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남자 사브르대표팀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014년에 이어 2회 연속 우승을 노린다. 아시안게임 개인전 3연패에 도전하는 구본길은 "이 멤버로 아시안게임까지 우승하면 최종 목표인 2020년 도쿄올림픽 우승도 한결 가까워질 것"이라고 팀 성적부터 챙겼다. 조종형 펜싱 대표팀 총감독은 "한국을 견제하려고 규칙이 숱하게 바뀌었지만 선수들 실력은 더 늘었다"며 "반쪽짜리 칼로 싸워도 이길 정신력이 있다"고 'F4'를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