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수송동 '비원떡집'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을 눈으로 보여준다. 강남의 유명 베이커리에서나 볼 법한 깔끔한 포장에 약식과 찹쌀떡이 들어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운영해 온 비원떡집을 물려받은 안상민(34)씨의 아이디어다.
1949년에 문을 연 비원떡집은 '궁중 떡 명가'로 유명했다. 안씨의 이모할머니인 홍간난씨가 조선 왕실의 마지막 궁중 음식 기능 보유자로 알려진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궁중 떡 빚는 방법을 전수받아 창덕궁 인근에 차렸다. 1970년대 안씨의 아버지 안인철씨가 이모인 홍씨의 떡집을 이어받았다. 홍씨는 지난 1997년 작고하기 전까지 떡집을 함께 운영했다. 안씨는 창덕궁 앞에서 장사하며 명성을 쌓아온 떡집을 물려받으며 가게를 종로구 수송동으로 옮겼다.
새 주인이 된 안씨는 손님들 대부분이 늘 보던 단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씨는 "이대로 안주하면 결국엔 '옛날 떡집'으로만 남게 될 것 같았다"며 "20·30대도 먹어 보고 싶은 떡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스티로폼 용기에 투박하게 담긴 '시장 떡' 이미지를 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먼저 국내 유명 베이커리와 화과자점을 돌아다니며 연구에 들어갔다. 겉포장 디자인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국내외 유명 디자인 서적도 샅샅이 뒤졌다.
2년에 걸친 고민 끝에 군더더기 없는 흰색 한지에 곱게 포장된 비원떡집표 떡 포장이 탄생했다. 쌍개피떡부터 삼색 단자, 약식 등 비원떡집의 대표 떡을 흰색 상자에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 보기 좋게 담은 선물 세트도 마련했다.
안씨의 전략은 주효했다. 소셜미디어에 비원떡집의 사진이 올라오면서 젊은 층이 부쩍 늘었다. 최근 손님 중 30%가 20~30대다.
안씨는 "69년간 이어온 맛을 그대로 살리되, 깔끔한 디자인을 떡에 입혀 신선하게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행 가이드 책에서도 비원떡집을 조명했다.
덕분에 외국인 손님이 늘어났다. 안씨는 "전체 손님 중 30% 정도가 외국 손님"이라고 했다. 일본 오카야마(岡山)에서 온 관광객 유키 이토(34)씨는 "흰 상자에 담긴 알록달록한 떡들이 마치 보석 같아서 바로 먹기 아깝다"고 했다.
비원떡집 대표 메뉴는 두텁떡이다. 고종황제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호두, 밤, 잣, 대추와 꿀을 버무린 소를 찰떡 안에 넣고 팥고물을 묻혀주면 두텁떡이 완성된다. 팥의 고소함과 대추의 달콤함, 유자청의 상큼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팥고물 껍질을 벗긴 거피(去皮)에 설탕과 계핏가루를 섞은 쌍개피떡도 잘 팔린다. 재료 준비를 위해 안씨는 매일 오전 3~4시쯤 기상한다고 한다. 69년 전처럼 하루치 떡을 만드는 데 여전히 12시간이 꼬박 걸린다. 두텁떡 1봉에 3500원, 쌍개피떡은 1봉에 3000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역대 청와대 주인이 비원떡집의 단골손님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선 얼마 전에도 두텁떡을 세트로 주문해 갔다고 한다. 비원떡집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유명하다. 지난 8일 부산에서 딸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온 이숙희(56)씨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비원떡집 두텁떡을 넉넉히 사 간다"고 말했다.
비원떡집에선 두텁떡, 쌍개피떡, 약식, 단자, 잣설기 등 5가지 종류의 떡만 판다. 추가 메뉴 개발은 예정에 없다. 안씨는 "바꿀 것은 바꾸더라도 기본은 늘 잃지 않는 정신으로 가게를 지켜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