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코리안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달 29일 파리 15구(區) 구청 앞마당. 프랑스인 1만 여명이 무대 위의 부채춤, 태권도 시범을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관람석 맨 앞자리에서 필리프 구종(64·Go uzon) 15구 구청장이 아내와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파리 15구는 한인(韓人)들이 몰려 사는 곳으로 파리의 한인 타운 역할을 한다. 구종씨는 10년째 이곳 구청장으로 일하며 '한국인의 구청장'으로 불리고 있다. 파리에는 20개 구가 있지만 1만명가량으로 추정되는 한인의 절반인 약 5000명이 15구에 살고 있다. 100개에 달하는 파리의 한국 식당도 절반이 15구에 집중돼 있다. 구종씨는 "한국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나라"라며 "그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관할 구역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라고 했다.
구종씨는 한인 체육대회나 축제가 있으면 장소를 빌려주고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며 발벗고 뛴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은 코리안 페스티벌은 이전에는 공원 한쪽에서 주로 한인끼리 모이는 '한가위 축제'였지만, 2016년부터 구종씨가 적극적으로 후원한 덕분에 파리에서 손꼽히는 외국인 축제로 격상될 수 있었다. 그는 구청 앞마당을 선뜻 행사장으로 내줬고, 1억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하며 프랑스인들을 끌어모았다. 구청사에 대형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를 나란히 내걸어 시선을 모았다. 그는 "15구가 '파리 안의 한국'으로 자리 잡았다"며 "요즘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한 행사를 하면 누구나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코리안 페스티벌에 모인 프랑스인들은 공연도 즐기고, 한국 음식을 파는 거리 식당에서 길게는 한 시간씩 기다려 파전·떡볶이 등을 사먹었다.
구종씨는 이번 주말에도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여는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다. 한인들을 적극 도와준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인데도 특별히 초청받은 것이다. 앞서 이날 낮에 열리는 파리의 '김치 축제' 역시 15구 구청 앞마당에서 열도록 했다. 최종문 주(駐)프랑스 대사는 지난 4월 구종씨를 찾아와 "한인들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공화당 소속인 구종씨는 파리 부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중량급 지방자치단체장이다.
구종씨는 "15구에는 파리에서 흔하지 않은 고층 아파트가 센강변에 줄지어 있다"며 "한국인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센강 경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15구에 많이 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많이들 돌아가셨지만 관내에 6·25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 노병(老兵)들이 많이 거주한 인연도 있다"고 했다.
구종씨는 2016년 서울 서초구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는 "조은희 서초구청장과는 친구처럼 연락을 주고받고 지내며 15구에 서초구와의 우정을 상징하는 나무도 심었다"고 했다. 구종씨는 "우리 가족도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앞으로도 한국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