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이민자의 아들이 승리했다"
‘한인 2세’ 앤디 김(36)이 미국 연방 하원의원 입성에 성공했다. 미국에서 한국계 연방의원이 탄생한 건 1993~1999년 공화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 3선의원을 지낸 김창준 전 의원 이후 20여 년 만이다. 민주당 소속으로는 역사상 첫 한인 연방 하원의원 당선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앤디 김은 지난 6일(현지 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뉴저지주 제 3선거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의 상대는 지역구 3선에 도전하는 현역 의원 톰 맥아더였다. 초박빙의 승부를 펼친 탓에 당선 확정이 늦어졌지만, 앤디 김은 결국 맥아더 후보를 1.1%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승리를 거머줬다.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김은 자신의 가족사를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소개해왔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지만,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몸담은 이력이 있다. 국제·외교 전문가로 통하는 미국 그는 남·북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인 이민자 2세’ 앤디 김, 엘리트 코스 거쳐 외교·안보 전문가로
앤디 김은 1982년 미 뉴저지주 남부 지역 말튼에서 태어났다. 한인 이민자인 앤디김의 아버지 김정한(69)씨는 고아원 출신으로, 어린 시절 길거리를 전전했다. 그러나 그는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미국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나와 유전공학 박사가 됐다. 앤디 김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건너온 후 뉴저지주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앤디 김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미국에서 각각 암과 알츠하이머 퇴치를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와 간호사로 일하며 수천명의 사람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앤디 김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캘리포니아의 딥스프링스 칼리지를 거쳐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영국의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앤디 김은 옥스퍼드대 유학시절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아이 2명을 두고 있다.
그는 안보·외교 전문가로서 길을 걸었다. 2009년부터 미 국무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당시 미군 사령관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전략 참모로 일했다.
앤디 김은 국무부 상원 외교위원회를 거쳐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 백악관 NSC의 이라크 등 중동 국가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관 전략 참모도 역임했다. 당시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간선거 유세가 한참이던 지난 8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앤디 김에 대해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 네거티브 공세도 꺾지 못한 ‘아메리칸 드림’
앤디 김은 자신의 인생과 가족사를 ‘아메리칸 드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이유에 대해 "뉴저지는 이민 가정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곳에서 그런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을까봐 걱정이다. 나는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나를 키워준 사회 공동체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게 해준 국가(미국)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앤디 김은 민주당 후보로 뉴저지 3선거구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그는 정치 경험이 전무했지만 상대는 지역구 3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현역 의원 톰 맥아더였다. 맥아더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트럼프 케어’를 만든 인물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다. 게다가 그가 출마한 선거구는 유권자 65만명 중 백인이 85%에 달하며, 한국인은 300여 명에 불과한 곳이다. 험난한 싸움이 예상됐다.
맥아더는 유세 기간 앤디 김에 대해 지독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그는 앤디 김의 이력을 깎아내렸다. 앤디 김이 아시아계란 점을 부각하고, 앤디 김의 태생과 그의 가족들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앤디 김은 우리의 일원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TV 광고도 냈다. 그러나 이는 악수(惡手)가 됐다. 앤디 김은 미 필라델피아 지역 온라인 매체 필리닷컴에 "미국인들은 지도층의 부정적인 공세와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는 언행에 지쳐 있었다"며 "결국 사람들은 정치에서 예의와 정중함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6일 치러진 선거 당일 개표 초반 앤디 김은 맥아더에게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개표가 99%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승자가 뒤바뀌었다. 미 언론은 앤디 김의 승리를 전했다. 그러나 당시 맥아더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표차가 얼마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14일 앤디 김의 당선이 확정됐다. 앤디 김은 맥아더보다 3만3600표를 더 얻어 49.9%의 최종 득표율로 맥아더(48.8%)에 1.1%포인트 앞섰다.
◇ "한국계 이민자 아들의 승리"…대북 문제에도 관심
앤디 김은 당선 소감에서 "한국계 이민자의 아들이 연방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는 그 자체로 미국을 위대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펼쳐온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 헬스케어, 사회보장 확대 등을 내세웠다. 앤디 김은 당선 후 "정책에 집중한 유세를 펼쳤다"며 "앞으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앤디 김은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 문제 해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계속해서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앤디 김은 "북핵은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문제다. 당파의 실리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