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로스앤젤레스, 서정환 기자] ‘성공한 덕후(성덕)’란 말이 유행이다.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사람들이 칭송을 받는 세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성덕'은 LA 다저스 단장직을 역임한 파르한 자이디(4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임 사장이 아닐까.

데이터분석 전문가였던 자이디는 어떻게 메이저리그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평범한 분석가에 불과했던 그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자이디는 오클랜드 스카우트, 다저스 단장 등 빠른 시간에 메이저리그 구단의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 7일 샌프란시스코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뷰는 자이디의 자이언츠 사장 취임 전 다저스 단장 신분으로 이뤄졌습니다.)

- 어떻게 메이저리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 원래 MIT에서 과학부문 학사학위를 땄고, UC버클리에서 경제학부문 박사학위를 땄다. 경제학자가 될 생각이었다. 그런데 2003년 그 유명한 ‘머니볼’ 책을 읽고 야구에 빠지게 됐다. 특히 프로야구에서 선수로 뛰지 않았던 사람도 메이저리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대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책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곧장 야구와 관련된 여기저기에 내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클랜드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심지어 그 구단에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던 시절이었다. 무작정 이력서를 넣었더니 며칠 뒤 데이빗 포스트 부단장에게 연락이 왔다. 일주일 뒤 빌리 빈의 사무실에서 면접을 봤다. 난 정말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 ‘머니볼’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는데 빌리 빈의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얼마나 떨렸나?

▲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감명을 받은 책의 주인공이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아주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난 운동선수로 뛴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 덩치는 처음 봤다. 영화 속 주인공 브래드 피트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하. 어쨌든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잘 마쳤다. 정말 비현실적인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나보고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 구단에서 일하기 전 ‘스포팅 뉴스’의 판타지 스포츠 부서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야구단에서 실제 팀을 운영하는 것은 모든 판타지 유저의 꿈이 아닌가?

▲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난 판타지 스포츠회사의 컨설팅 부서에서 일했다. 스포츠의 많은 분야와 접촉하면서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 1년을 일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무래도 구단에서 일하기에는 뭔가 거리감이 있겠다 싶었다.

- 과거 업계에서 ‘선수출신 단장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예전만 해도 당신처럼 비즈니스를 전공한 사람이 단장이 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실제 메이저리그 선수출신 단장은 시애틀 제리 디포토 한 명만 남았다. 왜 선수출신 단장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 과거와 비교해 단장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야구는 아주 큰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다른 비즈니스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던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데 더 유리한 점이 많이 생겼다. 과거에는 선수출신 단장이 프론트 오피스의 결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들은 선수들에게도 특별한 조언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단장은 업무집행과 구단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격이 더 강하다. 그래서 요즘 야구경력이 아닌 다른 특별한 배경을 가진 단장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 빌리 빈이 오클랜드 단장시절 당신을 애플이나 구글에게 뺏길까봐 두렵다는 말을 했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었나?

▲ 난 흥미분야가 달랐다. 야구계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만약 오클랜드가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면, 난 경제학 분야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지 않았을까. 오클랜드 구단에서 일하던 시절을 정말 즐겼다. 하지만 야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빌리 빈에게 가장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 우리는 항상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스스로의 덫에 갇히곤 한다. 그러다보면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것도 두려워하고, FA 선수와도 계약하지 않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많은 단장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빌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점은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피하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해본다는 점이다. 실패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 자체가 당신을 힘들고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항상 구단에게 최고의 이익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행해야 한다.

일단 트레이드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내가 무엇을 잃을지 보다 최대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한다. 항상 트레이드를 할 때마다 내부에서 ‘저 선수를 얻어서 우리가 나아질 거야’라는 말보다 ‘저 유망주를 내주긴 아까운데’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빌리가 그런 것을 굉장히 잘했다.

- 다저스가 6년 연속 지구우승을 이뤘다. 항상 많은 팀 연봉을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30년 넘게 월드시리즈에서는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느꼈나?

▲ 내가 자초한 부담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임감을 느낀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는 큰 시장이 있고, 자랑스러운 프렌차이즈가 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지 너무 오래됐다’고 말이다. 항상 매일 생각하고 있다.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 모든 팀들이 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LA라는 큰 시장과 다저스의 깊은 역사, 많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기에 책임감이 더 크다.

- 빅데이터가 야구에 접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시간으로 투수들의 투구궤적과 구종, 스피드를 보여주는 ‘스탯캐스트’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야구를 보는 방법이 얼마나 바꾸었나?

▲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처음 오클랜드에서 일할 때는 차트에 일일이 모든 공을 기록했다. 비디오로 투구를 찍어 놓고 다시 돌려보면서 차트에 일일이 구종과 궤적을 기록하는 식이었다. 확실한 지점을 찾기 위해서 비디오를 몇 번씩 돌려보기도 했다. 그런 일은 몇 년 동안 했었던 것 같다. 확실히 ‘스탯캐스트’가 생기고 야구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마치 머릿속에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그려놓고 내가 외야에 있는 카메라로 야구를 보는 느낌이다.

스탯캐스트를 통해 선수들의 호흡, 루틴, 효율성, 구종과 구위를 사람들에게 시각화해서 전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구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도구를 잘 활용하면 야구의 수비적인 면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수비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 감독으로서 데이브 로버츠는 어떤 사람인가?

▲ 그의 에너지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정말 최고다.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화가 날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부정적이 되거나 당황할 때도 있다. 주변에 그처럼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있으면 주위를 환기할 수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포기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선수들도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 그런 기본이 로버츠를 좋은 감독으로 만드는 힘이다. 물론 다른 것도 잘한다.

- 5일 마다 클레이튼 커쇼의 등판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떤가?

▲ 사람들은 부럽다면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왜냐하면 커쇼가 마운드에 오르면 어느 때보다 승리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 커쇼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완봉승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 사실 그렇다. 커쇼처럼 위대한 투수에게는 등판마다 늘 그런 기대감이 부담이 되곤 한다. 그런 위대한 투수가 있는 팀에서는 프론트 오피스도 그에게 크게 의존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팬의 입장으로 그를 바라본다면 정말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다.

- 다저스의 다음 시즌 예상은?

▲ 힘든 시즌이 될 것이다. 라이벌 자이언츠도 있고 로키스와 다이아몬드백스도 만만치 않다. 빅리그 팀들은 항상 재능이 넘치는 유망주들이 나온다. 치열하지만 흥미로운 경쟁이 될 것이다.

자이디는 지난 7일 다저스의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 선수단 관리를 넘어 야구단 전체를 관장하는 책임자로 부임하는 그의 꿈을 이룬 셈이다. 다저스의 30년 무관에 책임감을 느꼈던 자이디는 이제 라이벌 자이언츠의 사장으로 다저스의 우승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자이디의 이적으로 2019시즌 다저스 대 자이언츠의 라이벌리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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