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일본산 신품종 감귤인 '미하야'와 '아스미'를 키운 300여 농가가 다 자란 50억원어치(약 920t)의 감귤을 출하하지 못하고 있다. 껍질이 얇고 색깔이 붉은 미하야는 '홍미향'이라고 불리는 품종이다. 아스미는 일반 감귤의 3분의 2 크기로, 두 품종 모두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2014년부터 일본에서 도입해 재배해서 지난해 처음 국내 대형마트·백화점에서 팔렸고, 2000여㎏ 물량이 '완판'될 만큼 인기가 있었다.

21일 제주도의 한 감귤 농장에서 농민 김모씨가 출하하지 못한 미하야(홍미향) 감귤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1월부터 수확했어야 할 감귤 약 50억원어치가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 올해 1월 일본 국립연구개발법인(한국의 농촌진흥청)이 한국 국립종자원에 두 품종의 특허와 관련해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일본에서 특허받은 두 품종을 한국에 공식적으로 수출한 적이 없다"며 제주도 농가의 미하야, 아스미 감귤에 대한 판매 중단과 로열티를 요구했다. 제주감귤농협 등 감귤 유통사들은 "품종 특허 분쟁이 있는 상태에서 감귤을 유통하면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며 유통을 중단했다.

두 품종을 국내에 들여온 종묘(種苗)상과 재배한 농가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본 농가에서 정식 구입해 들여와, 국립종자원에 신고하고 검역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립종자원은 "새로운 품종을 수입해왔다고 신고하면, 8일 안에 신고를 받아주는 것이 규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품종이 어떤 절차를 통해서 국내에 들어왔는지 등에 대해 확인하는 공식 절차가 없는 것이 이 같은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애써 키운 감귤을 못 따는 농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농민 김모(58)씨는 "정부가 발행한 문서를 믿고 사서 심은 품종이 보호는 못 받을망정, 일본 측에 도둑놈으로 몰렸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은 당장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측에 로열티를 주고 상품을 판매하거나, 협상을 통해 일정 기간 이전에 심은 감귤 나무를 폐기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 측이 국내 법률대리인을 선임하고 농가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언제 결론이 날지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농민 전모(62)씨는 "내년 1월이 출하 마지노선인데, 올해 농사는 망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국내 수입하는 해외 품종에 대한 이력 추적과 로열티 문제에 대해 민관이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