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 선생의 이름을 딴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인촌로' 인근 주민 70%가 도로명을 현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일부 시민단체가 친일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며 인촌로 개명을 요구하자 고창군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고창 부안면은 인촌의 고향이다. 하지만 고창군은 "여론조사는 참고용일 뿐"이라며 개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고창군은 최근 부안면 주민 300명에게 인촌로 도로명 변경에 대해 물었더니 70%(210명)가 '현 상태 유지'를 선택했다고 3일 밝혔다. '바꿔야 한다'고 답한 주민은 23.3%(70명)에 그쳤다. 6.7%(20명)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고창군민 1000명(부안면 주민 300명 포함)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54.1%(541명)가 '현 상태 유지'라고 답해 과반이었다. 33.4%(334명)가 '변경해야 한다', 12.5%(125명)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부안면을 제외한 지역(700명)에선 '현 상태 유지' 47.3%(331명), '변경해야 한다' 37.7%(264명), '잘 모르겠다' 15%(105명) 등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고창군이 지난해 11월 29일~12월 18일 여론조사 전문 업체인 케이티씨에스에 의뢰한 '인촌로 도로명 변경 및 인촌 동상 철거 요구' 여론조사에 따른 것이다. 고창 인촌로는 심원면 용선 삼거리에서 부안면 부안삼거리까지 12.5㎞다. 고창군은 지난 2008년 인촌로 지명을 결정할 때에도 주민 여론조사를 진행해 도로명을 확정했다. 부안면 1633가구 중 260가구가 이 도로명 주소를 쓰고 있다. 도로명주소법에 따르면 인촌로를 주소로 쓰는 주민이나 사업자 중 20% 이상 동의를 얻어야 도로명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주민·사업자 50% 이상이 찬성해야 도로명을 변경할 수 있다. 해당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도로명 변경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주민·사업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로명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고창군은 여론조사 결과 '변경 반대'가 압도적인 우세로 나오자 공론화 위원회를 열어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고창군 관계자는 "인촌 선생뿐 아니라 고창이 고향인 서정주 시인까지 전반적인 친일 문제를 공론화 위원회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론화 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정봉택(78) 부안면 인촌마을 이장은 "인촌 선생은 고창 군민이 자랑하는 인물이고, 존경하는 사람도 많은데 개명은 지나치다"며 "주민들이 개명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데도 외부에서 자꾸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