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균 조회 수 8억회. 전 세계 만화 관련 사이트 중 조회 수 랭킹 15위. 한국에서 인스타그램보다 조회 수가 많이 나오던 인기 사이트. 그리고 나라망신.

지난 8일 정부가 폐쇄했다고 발표한 불법 만화 공유 사이트 '마루마루' 얘기다. 이날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저작권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 2013년부터 마루마루를 운영하며 4만2000여 건의 만화를 무단으로 공유하고 이를 이용해 최소 12억원 이상의 광고 수입을 챙긴 혐의로 이모(33)씨 등 운영진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런 불법 공유 만화 대부분은 국내에서도 수요층이 두터운 일본 만화였다. 이들은 음란물 사이트였던 소라넷이나 각종 불법 도박 사이트처럼 서버를 해외에 두는 방식으로 정부와 경찰의 추적을 피해왔다. 특사경은 미국 국토안보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1년간 추적한 끝에 이들의 덜미를 잡았다. 수사를 통해 드러난 마루마루의 운영 실태는 단순히 만화를 불법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소위 '기업형 조폭'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게다가 마루마루 창업주이자 핵심 운영진인 이씨는 특사경의 수사망이 조여오기 전에 일본으로 도피해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씨가 해외에서 마루마루를 대체할 새로운 사이트를 다시 만들어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만화 애호가에서 불법 만화 공유 사업가로

수사 관계자들과 마루마루 운영에 관여했던 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씨는 평범한 일본 만화 애호가로 출발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워 번역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 됐고, 20대가 된 후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를 만들어 일본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로 한국에 발매되지 않은 일본 만화를 구해 스캔한 뒤 포토샵을 이용해 말풍선의 일본어 대사를 한국어로 바꿔서 올렸다. 일본 만화의 경우 현지 만화잡지에 실린 최신화가 국내에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보통 2~3달, 길게는 1년가량 걸린다. 이씨는 이 시차를 기다리지 못하는 일본 만화 팬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로 만화 공유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물론 원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만화를 무단으로 번역해 올린 것이니 불법이었다. 하지만 초기엔 방문자 수도 적고 보는 사람도 소수라 일본은 물론, 해당 만화를 수입하는 국내 출판사들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일본 만화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블로그 방문자 수가 많아지자 이씨의 취미는 사업이 됐다. 사이트를 개설하고 동업자들을 구해 만화를 대량으로 업로드해 조회 수를 올리고 여기에 광고를 붙여 돈을 버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렇게 2013년 마루마루가 탄생했다. 사이트 이름은 일본 만화 '건어물짱 여동생! 우마루짱'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삼중 방어막으로 국내 규제 무력화

이씨 같은 생각을 한 일본 만화 애호가들이 더 있었다. 비슷한 시기 '마나스페이스' '짱시시' 등 마루마루같이 일본 만화를 무단으로 번역해 공유하는 사이트가 여러 개 생겼다. 이씨가 남달랐단 건 일종의 '사업 감각'이었다. 불법이 명백했기 때문에 사이트 운영 방식을 교묘하게 만들어 법망을 최대한 피하려 했다. 초창기 이씨와 함께 마루마루 운영에 참여했다는 김모(33)씨는 "서버 주소를 해외에 두는 건 이 바닥(불법 만화 공유)의 기본 초식"이라며 "이씨는 마루마루 사이트를 구상하면서 아예 변호사에게 자문해 치밀하게 일처리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에라리온에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회사 명의로 미국의 유명 회사 서버를 임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라리온은 유명한 조세회피처 중 하나기 때문에 일석이조였다. 사이트 구조도 2중으로 만들었다. 이용자가 마루마루에 접속해서 보고 싶은 만화 제목을 클릭하면, 자동으로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게 한 것이다. 이는 저작권법을 침해한 게시물의 링크를 올린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악용한 수법이었다. 즉 마루마루에는 불법 만화의 링크만 올려서 법망을 피하고, 만화를 저장해서 볼 수 있는 사이트는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이트를 실질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씨는 만화를 저장해둔 사이트의 도메인 주소를 '윤코믹스' '와사비시럽' 등으로 계속 바꿔가면서 운영했다. 저작권법 침해 사이트로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가 들어가면 도메인 주소만 바꿔서 영업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즉 페이퍼컴퍼니와 해외 서버 임대, 그리고 이중 사이트 구조라는 세 개의 방어막으로 국내 규제를 완전히 무력화한 것이다.

마루마루에는 하루 평균 20~30건씩 불법 번역 만화가 올라왔다. 손님을 끌기 위한 물량 공세. 하지만 이씨 혼자서 번역하고 스캔해서 올리기는 불가능한 양이다. 여기서 다단계 방식이 등장한다. 이씨는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과 인맥 등을 통해 이른바 '역자'와 '식자'를 고용해 일을 맡겼다. 역자는 말 그래도 일본 만화를 번역해주는 이다. 식자(植字)는 인쇄된 만화를 파일로 스캔한 뒤 일본어 말풍선을 한국어로 바꾸는 일을 하는 이를 가리키는데, 인쇄업의 식자공(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대로 조판하는 옛 직업의 종사자)에서 따온 말이다. 대부분 평범한 일본어 전공 학생이거나 만화동호회원 등이었던 역·식자들은 만화 한 건당 수만원가량의 수고료를 받고 일했다고 한다. 이들은 일거리를 주고받을 때는 이메일로만 연락했고, 돈거래도 대포통장을 이용했다. 이씨는 사이트 조회 수를 근거로 불법 도박 사이트 등 주로 음성적인 광고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접촉해 광고 영업을 해서 돈을 벌었고 이 중 일부를 역자와 식자에게 수고비로 준 것이다. 특사경에 따르면 이런 운영비를 제하고도 이씨가 6년간 벌어들인 돈은 최소 12억원. 문체부 관계자는 "거래 자체가 워낙 다단계인 데가 그 방식이 은밀했기 때문에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진 것 이외에도 수입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역·식자들 중엔 고등학생들도 섞여 있었는데 대부분 이런 행위가 심각한 범죄 행위인 줄 모르고 취미 삼아 참여했다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불법 뻔한데도 6년간 속수무책

문제는 마루마루의 운영 자체가 아니라 이를 폐쇄하는 데 무려 6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다. 운영자뿐 아니라 이용자들도 마루마루가 불법인 걸 알고 있었고, 일본 만화를 수입하는 국내 출판사나 저작권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이씨가 교묘한 방식으로 규제를 피했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를 수입하는 출판사 등이 나서 몇 번이나 저작권 침해 신고를 했지만, 마루마루는 불법 만화 링크만 올린 것이라 위법이 아니란 대답만 들었다. 미국 회사 서버를 썼기 때문에 해당 회사의 협조 없이 운영자를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씨는 아동 음란물이 걸린 경우에는 미국 회사들이 다른 나라 사법기관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점을 의식해 마루마루에선 아동 음란물 소지가 있는 만화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뻔한 불법을 눈 뜨고 수년째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 출판계에선 마루마루가 한국 저작권의 혼탁 상황을 방증하는 대표 사례처럼 거론됐다. 그야말로 나라 망신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씨의 신원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회사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체부 특사경은 미국 국토안보부를 통해 신원을 보증받은 뒤 마루마루의 서버를 운영해주는 회사에 접촉해 이씨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씨는 작년 11월 갑자기 사이트에 '우리 가게 폐점했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린 뒤 잠적했다. 이후 마루마루에는 새 만화가 올라오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마루마루는 사이트 운영 구조와 거래 관계가 복잡해 실제 운영자를 추적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제2의 마루마루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3년간 유사 사이트들을 집중 단속하고 해외 서버 사업자들과의 공조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