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일도 하고, 사업을 살리는 일도 한다. 경기도 의왕에 있는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 김치원(41) 원장은 의사이면서 경영 컨설턴트다. 사람을 돈으로 따지면 안 되는 업과 사람도 돈으로 따져보는 업을 오가면서 독특한 이력을 쌓아올렸다. 서울대 의대 96학번으로 수련의를 마치고 내과 전문의 자격을 따자마자 경영 컨설팅업계 1위 맥킨지앤컴퍼니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서울병원을 거쳐 4년간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2012년 개업의로 변신했다. 지금 직함에서 알 수 있듯 요양병원이었다. 이력에 서울대·맥킨지·삼성을 적어 넣은 의사 겸 경영 컨설턴트가 택한 '사업 아이템'치곤 의외였다. 당연한(?) 결과 같지만 병원 경영은 곧 궤도에 올랐다. 의사 2명, 간호사 10명으로 시작한 병원은 이제 의사 9명, 간호사 40여명 규모로 성장했다. 컨설턴트답게 철저하게 이익을 따져 운영한 결과겠지만 동시에 각종 요양병원 관련 커뮤니티에선 "직원들도 부모님을 입원시키는 요양병원"이란 평가도 받는다. 환자를 돈으로 따지기만 했다면 받을 수 없는 평가다. 컨설턴트 출신 의사의 요양병원 경영 철학, 나아가 그가 가진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원장은 경쾌한 캐주얼 차림에 색이 들어간 안경을 끼고 백팩을 맨 채 나타났다. 요양병원장이라기보다는 스타트업 대표 같은 차림이었다.
―가장 궁금한 것부터. 왜 하필 요양병원이었나요. 컨설턴트들이 선호하는 소위 '섹시하면서 돈 잘 버는 아이템' 같진 않습니다.
"나름 오랜 고민을 거쳤습니다. 거칠게 말해 한국에서 병원이 돈을 버는 구조는 단순합니다. 환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돈을 벌죠. 환자는 보통 의사를 보고 병원을 결정합니다. 어떤 의사가 명의라고 소문나면 환자가 몰리고 병원은 돈을 벌죠. 근데 요양병원은 다릅니다. 환자들이 의사가 아니라 병원을 보고 오거든요. 제겐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한 건가요.
"요양병원을 찾는 분들은 치료보다 병원 환경이나 서비스에 더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론 병이 낫는 게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 병원 의사가 명의라더라'가 아니라 '그 병원에 입원해 있기 좋더라'는 소문이 환자를 부르는 구조죠. 의사가 아니라 시스템이 돈을 버는 겁니다. 마케팅이나 경영 전략 등 제가 가진 경영 컨설턴트 경험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본 거죠."
―요양병원은 좀 심하게 말하면 '현대판 고려장 하는 곳'이란 말도 듣는 곳입니다. 거기에 시스템이란 말을 쓰면 더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요.
"그 반대입니다. 요양병원이야말로 가장 시스템이 필요한 곳입니다."
―왜죠?
"크게 보면 제도 때문입니다. 우리 건강보험제도는 기본적으로 의사가 치료를 많이 할수록 돈을 많이 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요양병원은 반대입니다. 치료를 안 할수록 의사가 돈을 벌게 됩니다. 어떤 치료를 하든 환자 1명을 볼 때 의사에게 가는 보험급여가 정해져 있거든요.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값을 아끼면 그만큼 남길 수 있단 얘기죠. 요양병원에 대한 불신이 높은 원인도 거기에 있습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선 철저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요.
"요양병원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 운영 시스템을 배우려고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모든 요양병원이 그런 건 아니지만 거긴 너무하더라고요.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쓰는데 제일 싼 거 딱 한 종류만 쓰는 식이었죠.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제도가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지만 의사도 부끄러운 짓을 하는 거죠."
김 원장의 경영 전략을 요약하면 '환자에게 최대한의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양병원 환자 중엔 자신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죽고 싶은지 살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는 환자가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에 가보면 그런 전략이 곳곳에 스며 있다. 병동에 돌아다니는 의사·간호사 등 대부분이 30~40대 젊은 직원이다. 대개 요양병원 의료진이 은퇴 연령의 의사거나 인턴만 수료한 초짜 의사들로 채워진 경우가 많은데, 이 병원은 의사 전원이 전문의다. 환자가 처방받은 약과 치료 내역도 모두 보호자에게 상세히 알려준다.
병원 시설 구석구석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병실 침상 간 거리가 보건복지부 지침(1m)의 2배 가깝게 널찍널찍하게 배치됐고, 침상 옆 관물대도 사람 키 높이에 수납공간이 많은 걸 설치했다. 백미(白眉)는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 하루종일 환자를 침상에 두는 요양병원이 많은데, 이곳은 거동 가능한 환자들은 매일 비누나 등불, 종이접기 등 활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몸을 움직이는 환자가 많은 것 자체가 병원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김 원장은 "병원의 조명이 밝고 활동적인 환자가 많으면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도 병원 방문에 거부감이 줄어든다"며 "보호자가 자주 오면 확실히 환자들의 경과가 좋아지는 선순환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한번은 거의 '죽으러 왔구나' 싶은 환자가 들어왔는데, 제가 보니까 왠지 회복될 거 같은 거예요. 환자가 의식은 없지만 생의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신반의하는 보호자를 설득해 최선의 치료를 집중했습니다. 결국 그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제 발로 일어나 퇴원하셨어요. 1년 뒤에 다시 우리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땐 환자 본인이 인공호흡기를 안 달겠다고 결정한 뒤 세상을 떠나셨죠. 제 경영 방침이 맞는 방향이란 확신이 든 계기였어요."
―맞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방향을 말하는 건가요.
"지속 가능한 병원을 만드는 겁니다. 경영 관점에서 보면 단기적 수익 극대화보다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하는 겁니다. 단기적으로 사람을 속여 돈을 벌 순 있어도 오래 못 갑니다. 의사가 엄한 짓을 하면 간호사가 압니다. 간호사가 가족에게 얘기하면 곧 지역에 소문이 나죠. 요양병원은 지역 기반 비즈니스입니다. 소문 앞에 장사 없습니다. 의사의 양심에 맞게 경영하는 게 오래가는 길이죠."
―모범 답안 같은 대답이군요. 그렇더라도 본인만의 생사관(生死觀) 없이 기계적으로 죽음이 일상화된 요양병원을 경영하긴 어려울 텐데요.
"가망 없는 말기 암환자와 서서히 기력이 쇠하는 환자, 심각하지만 치료 가능한 폐렴을 앓는 환자를 한데 몰아넣고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환자보다는 보호자 희망에 따라서 죽음의 방식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론 환자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여건에서 아직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남다른 생각은 보통 남다른 삶에서 나온다. '천재와 수재가 반반씩 섞인' 서울대 의대 동기 대부분이 직선 주로를 질주했던 것과 달리 김 원장은 갈지(之)자 삶을 살았다. 본과 3학년 때 서울대 의대 최초의 교환학생으로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전공과 무관한 경제학·경영학 수업을 듣느라 1년 '꿇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입학 동기들을 선배로 모시며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의사 가운이 제법 어울린단 얘기를 들을 때인데, 가운 대신 양복을 택했다. 2008년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곧바로 업계 1위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에 입사한 것.
―서울대와 맥킨지에 삼성까지. 스펙만 보면 문·이과 통틀어 상위 0.1% 안쪽에 들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를 곧잘 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겠네요(웃음).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대 의대 가보니 정말 제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더라고요. 수업 시간에 앉아서 강의만 들어도 모든 걸 이해하는 천재들을 보면서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오히려 전 의대생치곤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을 많이 갖는 학생이었던 거 같아요. 말하자면 과마다 학과 게시판을 유심히 보는 학생들 있잖아요. 그게 저였습니다. 교환학생도 그 덕분에 가게 된 거죠."
―왜 하필 컨설턴트였나요.
"저는 이론보다는 실기에 끌리는 타입입니다. 의대에서 성장하려면 결국 연구를 잘해야 하는데, 저는 그쪽 재능은 없는 거 같았어요. 이론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뜬구름 잡는 얘기보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력을 느꼈죠. 의사가 사람의 건강 문제를 해결한다면 경영 컨설턴트는 회사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대상은 달라도 접근 방식은 비슷하죠. 경영 컨설턴트의 문제 접근 방식이 의사로서 훈련받은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결국 의사의 삶으로 돌아왔군요.
"컨설턴트는 결국 외부자입니다. 맥킨지에서도,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조직 안의 이방인이란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제가 어떤 쓸모가 있으니 조직에서 써줬던 거죠. 그리고 컨설턴트라는 게 본질적으로 남 좋은 일 해주는 일이거든요. 남의 것이 아니라 나만의 무언가를 쌓는 일을 하려면 결국 내 능력을 잘 활용해 스스로 가장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바로 요양병원 개업이었던 거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생의 마지막에 있다면 당신 요양병원에 들어가겠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인데, 흥미롭네요(웃음).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병원 직원들이 자기 가족을 우리 병원에 입원시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스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치원 원장이 말하는 좋은 요양 병원 선택 요령
반드시 요양 병원을 방문해 관찰하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좋은 요양병원을 고르는 최고의 방법은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자신의 눈으로 시설을 관찰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의사가 회진을 얼마나 자주 도는지 살피라
치료는 정성이다. 의사들이 환자 회진을 얼마나 자주 도느냐가 정성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회진조차 잘하지 않는다면 환자들이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일 수 있다.
본인 부담금이 싸다면 주의하라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을 싸게 받는 대신 중요한 의료 서비스를 생략해 건강보험으로부터 받는 수가를 많이 남기는 방식으로 이익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하라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집 근처에 있는 병원도 많이 찾는 추세다. 보호자가 자주 찾는게 환자에게도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