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원흉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이 있다. '유식대장' 김유식(47) 디시인사이드(DCinside·이하 디시) 대표다. 커뮤니티 사이트 '선수'들은 모두 디시의 영향을 조금씩이나마 받았다고 말한다. 디지털 카메라 판매 사이트로 시작한 디시는 문을 연 지 올해로 20년이 된다.
디시는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다. 하루에 올라오는 게시물이 75만여 개. 압도적인 숫자다. 2, 3등 사이트를 합쳐도 디시에는 미치지 못한다.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다르다. 별도의 회원 가입 없이 바로 글을 쓰고 댓글을 달 수 있다. '갤러리'(디시 내 하위 게시판)에 따라 주제가 세분화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디시는 인터넷의 반말 문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디시가 생기기 전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반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져도 "잘못을 인정하시죠"라며 점잖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셜미디어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반말하고 욕하며 싸우는 경우가 흔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가진 사회적 파급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권, 대기업들도 '오늘의 유머' '뽐뿌' 등 커뮤니티 여론을 참고한다. 20년 가까이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의 경영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디시인사이드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를 만나자마자 "디시가 모든 커뮤니티 사이트의 아버지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다른 사이트들이 알아서 크고 알아서 사고 쳤는데 왜 내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제 봤다고 존댓말이냐
디시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올해로 40세라며 글을 남겨도 고등학생에게 "니가 몇 살이든 뭔 상관이냐"라는 말을 듣는다. 가수 아이유가 "나 아이유다"라는 글을 올리자 "× 먹어라"라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었다. 모두가 '디시갤러'가 돼 서로 욕하며 어울린다.
이 배경에는 반말 문화가 있다. 김 대표는 "회원 가입 없이 익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반말이 성행했다"고 했다. 김 대표가 PC 통신 시절부터 꿈꿔왔던 분위기다.
―디시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상호 존대가 인터넷 문화였다.
"디시도 처음부터 반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오체를 사용했다. 특별한 규제가 없으니 2004년쯤부터 서로 반말을 주고받더라."
―당시로서는 거의 유일했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PC 통신 시절 때부터 존댓말로 싸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로 비꼬아가며 '멕이는' 것 같았다. 언젠가 카메라에 대해 1명이 20명과 싸운 적이 있었는데 논리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한 명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마 나이를 알고 서로 존대했으면 그 학생은 분명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0년 초부터 반말을 하는 커뮤니티가 늘어났다. 디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말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언어가 존댓말과 반말이 구분되지 않는다. 언제 봤다고 격식 차려서 존대를 하나."
―그래도 처음 보면 존대를 하지 않나?
"인터넷에는 앞으로 서로 볼 일이 없다는 전제가 있다. 한 갤러리에 예의 바르게 가입인사를 한 이용자가 있었는데 3시간 뒤에는 욕설을 쓰고 있더라. 대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인터넷만의 매력이다.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같은 위치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현대판 가면극이나 마당놀이
디시는 악플의 바다다. 반말 때문에 갤러리들은 늘 험악하다. 비난은 예사고 욕설도 오고 간다. 최다 접속 수를 기록하는 '국내야구 갤러리'(야갤)에는 욕설이 없는 게시글을 찾기 어렵다. 이 갤러리 중 서로 존대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악플의 대상은 다양하다. 서로를 겨냥하는 것부터 시작해 연예인, 정치인까지.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탓에 "악플을 방치해 피해자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유튜버 ' 튜브' '카광' 등이 디시에 쓴 옛 악플이 밝혀져 방송을 중단하기도 했다.
―유명 유튜버들이 과거 디시에서 악플러 활동한 게 드러나고 있다.
"보아하니 다들 2000년대 중·후반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정치· 사회 갤러리'에서 한 가닥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혐오 표현이 넘쳐나는 갤러리는 한두 곳 정도다. 당시에는 코갤이었고 지금은 야갤인 것이다."
―악플에 대한 제재를 할 생각은 없는지.
"아무리 막아도 악플 달 사람은 단다. 디시가 아니라도 다른 데서 악플을 달았을 것이다. 그들이 해소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과거에 야한 사진을 많이 올리는 유저들을 위해 갤러리를 만들어준 적이 있다. 좋다고 거기에서만 놀더라. 만약 야갤이 없어지면 다른 데 가서 악플을 달 것이다."
―멍석을 깔아준다는 뜻인가.
"그렇다. 조선시대의 가면극이나 마당놀이라고도 생각한다. 말뚝이가 진짜 양반 앞에서는 놀리지 못하지만, 가상의 양반은 희롱하지 않는가. 나는 이 마당놀이에 멍석만 깔아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이 심할 때도 있다.
"나도 반드시 옳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심할 때도 많다. 그러나 하나씩 제재를 가하다 보면 말을 거르게 되고, 디시만의 성격을 잃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자는 취지다. 야갤은 주변에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어 들어오는 어린양들이 많다."
커뮤니티는 생명체
2016년 12월 '주갤(주식 갤러리) 수사대'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과거 동영상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갤은 국정감사 당시 박영선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갤 수사대가 찾은 동영상을 공개하며 유명해졌다.
김 대표는 이런 현상을 보며 "'주갤 날렸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언급이 많아지면 이용자 수가 늘어 도움이 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랐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갤러리만의 특성을 잃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 후 디시 내 방문자 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주식 갤러리는 일찌감치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
―디시가 흥한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커뮤니티는 생명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세분화해줄 뿐이다. 초창기 50여개 불과하던 갤러리가 지금은 2만2000여개가 됐다. 일반 축구에서 국내축구, 해외축구로 갈리는 식이다. K리그를 보는 사람도 있고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갤러리 내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면 따로 이야기할 곳을 만들어 주는 식이다."
―세세한 관찰이 필요하겠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어느 정도 이용자 수가 많으면, 소문을 타 그 분야의 마니아들이 찾는다. 그렇게 되면 갤러리 자체가 그 분야의 대표 사이트가 되기도 한다. 흙수저 갤러리 등 특별한 주제가 지속적으로 보이면 갤러리를 만들기도 한다."
―앞으로 디시의 운영 방향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뼛속까지 '야붕이'(국내야구 갤러리 이용자가 스스로 비하하는 호칭)다. '고수는 시장을 만들고, 중수는 맞는 시장을 찾고, 하수는 커 보이는 시장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하수다. 그저 어떤 시장이 커지는지 보다가 그 시장으로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