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데스크톱 컴퓨터는 느려서 못 쓰겠어요. 그냥 핸드폰으로 쓰면 안 돼요?"
초등학교 국어 시간 소설 써보기 수업. 특별히 컴퓨터실에서 진행됐다. 한 교시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완성본을 내지 못했다. 교사는 초등학생에게 소설 쓰기는 너무 어려웠나 싶어서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쓰면 된다"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휴대폰으로 쓰겠다"고 했다. 의아한 선생님이 "휴대폰으로 어떻게 쓰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반문했다. "어떻게 쓰냐는 게 무슨 뜻이냐"고. 반신반의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나눠 줬다. 학생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고 20분이 지나지 않아 모든 학생이 '카카오톡'으로 과제 제출을 완료했다.
스마트폰 세대인 요즘 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은 데스크톱 컴퓨터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다. 게임과 채팅 등 컴퓨터로 하는 놀 거리 대부분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피 대상이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 초등생 대상의 데스크톱 코딩 수업이 여기에 한몫했다. "어제 밤새도록 컴퓨터를 했다"고 하면 초등생 친구들끼리 "공부하느라 피곤하겠다"며 위로해 준다고 한다.
경기도 김포의 중학교 국어 교사 이모(31)씨는 "컴퓨터로 수업하면 학생 과반이 컴퓨터 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친다"고 말했다. 검지를 세우고 타자를 치는 자세다. 자판을 다 외우지 못해 손바닥으로 키보드를 가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노년층이 이렇게 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천지인 자판'에 익숙한 학생들이 복잡한 '쿼티 자판'을 외우지 못해 사용한다. 이씨는 "스페이스, 엔터의 위치를 몰라 물어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컴퓨터 수업 시간도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타자만 쳐도 즐거워하던 시절은 옛 이야기.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조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지긋지긋한 컴퓨터"라며 싫어한다. 7년 차 초등학교 교사 박모(32)씨는 "전에는 컴퓨터 수업이 있다고 하면 아이들이 들떠 있었는데, 요즘에는 영어회화실에 가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학교 과제를 위한 컴퓨터 학원을 따로 다니는 고교생도 늘고 있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정수민(16)양은 고교에 들어오자 숙제로 파워포인트나 워드를 쓸 일이 많아졌다. "컴퓨터로 숙제해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아예 다룰 줄 몰라 난감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나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양은 "친구들과 학원에 신청해서 PPT에 그림 넣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중·고교생의 '필수 스펙'이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응시자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3년 26만3994명이 응시했지만 2017년에는 16만2557명으로 급감했다. 서울의 한 컴퓨터 학원장은 "확실히 4~5년 전에 비해 워드프로세서를 따겠다고 오는 중·고교생이 줄었다"며 "반면 대학생들은 긴 분량의 리포트를 써야 할 일이 늘어났다며 더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세대를 '아이젠'(iPhone +Generation), 일본에서는 '스마호세다이'라 부른다.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2017년 미국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 자살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데스크톱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심리적 안정감은 전혀 상관없으니 청소년의 고유한 일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