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보다 더한 '대2병' 처방은?

이소희(가명·울산대 경제학과 2)씨는 4월 말 중간고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서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전공에 대한 회의감까지 몰려왔다. 이씨는 "1학년 때는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몰랐는데, 학년이 올라가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걱정이 커졌다"며 "같은 문제로 고민하다 휴학하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다"고 토로했다.

일명 '대2병'을 겪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대2병은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기력증, 우울증 등을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흔히 알려진 '중2병'과 달리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학생들은 새 학년 적응, 중간고사 준비로 3~4월을 분주하게 보내다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5월에야 현실을 직면해 대2병에 빠진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봄철 나들이족이 늘면서 '나만 빼고 다 행복하다'는 생각에 더욱 사로잡힌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낮은 전공 만족도 등으로 ‘대2병’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

◇점수 맞춰 들어온 학과… "적성에 안 맞아"

최근 발표된 조사 결과는 대학생 사이에 대2병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41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4.6%가 "현재 대2병 상태"라고 답했다. 대학생 10명 중 6명이 대2병을 겪는 셈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이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믿는 자긍심이 낮아진 데다 취업난, 소득 양극화 심화 같은 문제들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낮은 전공 만족도도 대2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적성을 고려하기보다 내신, 수능 성적 등에 맞춰 학과를 선택한 탓이다. 설령 원하는 과에 입학한 학생이라도 2학년 들어 전공을 심도 있게 파고들면서 소속 학과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학부로 통합 선발된 학생들은 2학년 진학 시 전공을 선택하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로 고민할 가능성이 더 크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미디어 관련 학과 2학년생인 박희연(가명·21)씨의 경우 기대와 달리 이론 암기 위주로만 진행되는 전공 수업에 실망감을 느껴 지난해 한 학기 휴학을 결심했다. 그는 "신입생 때 4.5점 만점에 4점 가까이 됐던 학점이 2학년 때 2점대로 확 떨어졌다"며 "이대로 계속 학교에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쉬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원인 중 하나다. 전희수(홍익대 세종캠퍼스 광고홍보학부 3)씨는 "2학년은 대외 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는 시기인데, 대외 활동을 많이 한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게 될 때가 있다"면서 "대학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고등학생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해 불면증을 앓거나 술에 의존하며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희연씨가 그린 웹툰.

◇적성 맞는 과 찾게 '타과생 전용 수업' 확대 바라

일각에서는 대2병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대학이 심리 상담 프로그램, 소규모 진로 특강을 확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을 수 있도록 다른 과의 전공 과목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는 '타과생 전용 수업'을 다양하게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된다.

만약 고민이 깊어 어떠한 일도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는 갭이어(Gap Year)를 갖는 것도 대안이다. 갭이어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여행 등의 경험을 쌓고 진로를 탐색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이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올 2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졸업한 이동기(26)씨는 "2학년 때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재능을 가졌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부분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타인의 능력을 보며 좌절하기보단 나의 장점에 집중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갭이어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갭이어 프로그램 제공 업체인 한국갭이어와 서울시, 전주시 등 지자체에서 관련 사업을 시행 중이다.

또한 김 교수는 정치 참여의 폭을 넓혀 학생들의 사회적 자긍심을 높여주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9세보다 더 낮춰 좀 더 많은 학생에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정치에 참여,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축적해주는 방식이다.

아울러 강용(54) 한국심리상담센터 대표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면서 "그래야 학생들이 다른 친구를 보면서 비교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만약 대2병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학생이라면 작은 성공을 거듭하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길 바란다"며 "예를 들어 쉽게 완성 가능한 모형을 꾸준히 제작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가급적 실내에만 머물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생각을 전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