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ㅣ호텔 뭄바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친다. '호텔 뭄바이'(감독 앤서니 마라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테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살 떨리게 재현해낸 영화다.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연쇄 테러 사건을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총성이 무차별적으로 빗발치고 포탄이 터지는 현장에 그대로 갇힌 기분을 느껴야만 한다. 보는 내내 현기증 나지만, 이것이 실제 벌어진 사건임을 생각하면 또 다른 전율이 찾아온다.

뭄바이 특급 호텔 '타지'에까지 테러범이 들이닥치고, 그곳에 갇힌 미국인 건축가 데이비드(아미 해머)와 인도인 아내 자흐라(나자딘 보디아니) 등은 살아남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호텔 직원 아르준(데브 파텔)은 갇힌 고객들을 탈출구까지 무사히 인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보통 현장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죽어가는 이들의 비극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데 치중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호텔 뭄바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하고 침착하게 현장을 그려낸다. 무심한 듯 냉혹한 공포, 그 차가운 낯빛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만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솜털까지 건드리는 듯한 밀도 높은 긴장감, 생생한 현장감이 날카롭게 살아나는 역설의 미덕이 또한 빚어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왔던 아미 해머의 연기는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기승전결을 받쳐주고, '라이언'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왔던 인도계 영국 배우 데브 파텔은 이야기를 강력하게 견인한다. 생존이란 게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살아있음이 어떠한 기적인지 영화는 애써 설명하지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적어도 지금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전시ㅣ한국 근현대 드로잉展 '소화'

가장 단순한 선(線)의 끼적임이 때로 가장 복잡한 작가의 본색을 드러낸다. 한국 근현대 드로잉 전시 '소화(素畵)'가 6월 23일까지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 1관에서 열린다. 김환기·박수근·이중섭·장욱진 등 국내 대표 화가 218명의 드로잉 300여 점을 선보인다.

김동인 소설 '신앙으로'(1930) 등에도 나오는 '소화'는 쉽게 말해 서구의 드로잉으로, 한국 서양 화단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드로잉 개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피는 기획전이다. 회화·조각 등과 비교해 완성도 면에서 차순위로 취급돼 온 드로잉이 점차 작가의 세계를 가늠케 하는 단초이자 독자적 작품성을 지닌 장르로 변화하고 있다.

뮤지컬ㅣ록키호러쇼

“꿈만 꾸지 말고, 실행해!(Don’t dream it, be it!)”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이 대사로 압축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프랑큰 퍼터’는 은하계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온 양성애자 과학자로, 도덕과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 유희와 쾌락을 위해 난잡한 파티는 물론 살인까지 일삼는다. B급 정서 가득한 ‘19금’이지만, 2001년 국내 초연 이래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금기와 관습에 억눌린 관객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작품. 올해는 작품 속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얼롱 데이’도 마련돼 있다. 7월 28일까지.

클래식ㅣ생황 협주곡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란 뜻에서 파이프오르간과 원리가 같아 영어 이름도 ‘마우스(mouth) 오르간’인 전통 악기 생황(笙簧). 봉황이 날갯짓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외관만큼이나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생황이 18일 오후 5시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의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지휘 발두어 브뢰니만)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중국 생황 연주자 우웨이(49)가 오스트리아 작곡가 베른트 리하르트 도이치의 협주곡 ‘현상’을 들려준다. 본래 생황은 17관이지만 우웨이는 37관으로 개량해서 반음계 연주까지 가능하다. 그는 “관객들이 지저귀는 새들을 따라 허공으로 함께 날아가는 듯한 환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ㅣ리락쿠마와 가오루

어른도 귀여운 걸 좋아한다. 위에서 치이고 아래서 들이받는 사회 생활을 겪다보면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존재를 보며 위로받고 싶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씨’는 그런 이들을 위한 동화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 캐릭터 리락쿠마는 동그랗고 까만 눈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곰이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대는 게으른 뒤태가 특히 치명적(?)이다. 평범한 직장인 가오루씨는 우연한 계기로 이 리락쿠마와 동거하게 된다. 내일도 오늘과 별다를 것 없을 거란 절망 속에 살아가던 가오루씨의 일상은 게으르고 귀여운 곰 덕분에 조금 더 소란스러워지고 밝아진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름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