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림동 여경 영상'→체력검정 논란으로 번져
경찰공무원 체력검정 기준, 5종목 모두 남녀 차등 둬
'女무릎 대고 팔굽혀펴기'는 어디서?…경찰 "국민체력실태조사 참고"
"현장 대처할 정도의 체력 검증 기준 연구 이뤄져야"

‘대림동 여성경찰관 동영상’과 관련해 여경이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불똥이 경찰공무원 선발 체력검정으로까지 옮겨붙었다. 현재 경찰을 채용할 때 체력 평가 기준은 모든 항목에서 남녀별 차이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경찰관의 체력 검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특히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무릎 대고 팔굽혀펴기’는 불공정한 체력시험 항목이라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위쪽)과 한국의 경찰 채용 체력시험 모습. 한국에선 여성 응시자들이 무릎을 바닥에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을 허용해 “부실 체력 검정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왔다.

◇여성 응시생 10점 만점, 남성 '평균 5점' 수준과 비슷
현재 우리나라 경찰공무원의 채용시험 체력검정은 남녀 모두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악력 △팔굽혀펴기 5종목을 평가한다. 경찰공무원 임용령 제43조에 따라 총점이 19점 이하면 불합격이다. 5개의 평가종목 중 1점을 받은 종목이 1개 이상이어도 합격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점수 측정 기준은 다르다. 100m 달리기의 경우 남자는 13초 이내, 여자는 15.5초 이내에 들어오면 가장 높은 점수인 10점을 받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만점(10점) 기준이 2.5초 차이가 있다. 여자 응시생의 만점 기준인 15.5초는 남자 응시생의 5점 기준(15.1~15.5초)과 비슷하다.

경찰공무원 선발시 남녀별 체력검정 평가 기준.

1000m 달리기의 경우 남녀 10점 기준이 각각 230초(3분 50초), 290초(4분 50초)다. 여자 응시생이 290초 이내 들어오면 10점 만점이지만, 남자 응시생이 같은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한다면 최하위 점수인 1점을 받게된다. 남자 1000m 측정 점수를 보면 280초 이후 통과기록은 1점이다.

윗몸일으키기의 만점 기준은 1분에 남자는 58개, 여자는 55개 이상이다. 좌우 악력(握力) 테스트는 남자가 61kg, 여자가 40kg 이상일 때 만점을 받는다. 대체적으로 여성 응시생의 10점 기준은 5종목 평균 남성 응시생의 5점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종목은 ‘팔굽혀펴기’다. 남자는 1분에 58개 이상, 여성은 1분에 50개 이상을 해야 10점을 획득할 수 있다. 문제는 자세다. 남성은 머리부터 일직선이 되도록 유지한 상태에서 팔을 굽혀 몸(머리~다리)과 매트 간격이 5cm이내로 유지시켰다가 원위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경찰공무원 채용 체력시험장의 모습. 응시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여경에게는 ‘니 푸시업(무릎을 바닥에 대는 자세로 팔굽혀펴기·knee push up)’이 허용된다. ‘무릎 대고 팔굽혀펴기’는 현재 경찰 체력검정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논란의 대상이다. 여군 응시자들은 남성과 여성 모두 정자세로 팔굽혀펴기를 해야 한다.

연세대 대학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석사 과정 이덕환 운동처방사는 "정상적인 자세로 푸시업을 하면 몸 전체의 하중이 실리는데, 무릎을 바닥에 대면 하체의 하중이 실리지 않게 된다"며 "여성의 경우 니 푸시업을 하게 되면 50% 정도의 힘 밖에 쓰지 않아, 정자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쉽게 푸시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女 '니 푸시업'은 어디서 왔나?…경찰 "국민체력실태조사 참고"
여성에게만 니 푸시업을 허용한 배경은 무엇일까? 경찰청 측은 "현재 경찰 채용 체력검정 점수표 기준은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국민체력실태조사'를 참고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국민체력실태조사는 체육정책 입안을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 활동으로, 국민들의 체력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89년부터 2년마다 조사돼 발표되고 있다.

실제 2007년 국민체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초등학교 1~4학년과 60세 이상 노인을 제외한 일반 성인은 남자의 경우 팔굽혀펴기를 실시하고, 여자는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실시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팔굽혀펴기 항목은 2008년부터 측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인근 술집에서 주취자 허모(53)씨를 여성 경찰관이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버둥 치자 주변 시민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경찰관 체력기준 상향해야"…미국·영국 등 남녀 동일
일각에서는 일반 국민의 체력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공무원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해외 사례를 들어 여경의 체력 검정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대부분의 주와 영국은 남녀 구분없이 같은 기준으로 경찰관을 채용한다. 싱가포르는 성별이 아닌 연령에 따라 차등 기준을 두고 평가한다. 성별에 따라 평가 기준을 달리하는 국가의 경우에도 팔굽혀펴기 항목은 정자세로 진행된다. 일본과 뉴질랜드 여경은 팔굽혀펴기 종목에서 정자세로 1분에 15회 이상을 성공해야 한다.

하 의원은 "전 세계 여경, 아니 동양권 여경과 비교해 볼 때도 한국 여경 체력 검사만 크게 부실하다"며 "여경 불신을 해소하려면 부실한 체력검사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출동하는 대부분의 긴급 현장은 일반 국민 수준 이상의 체력과 운동신경이 필요한 순간이 많다"며 "여경뿐만 아니라, 경찰이 긴급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는지, 측정과 관련된 체계적인 연구와 기준 상향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반복적으로 여경의 체력검정, 특히 니 푸시업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현재 경찰 선발시험과 관련한 체력검정 기준 개선을 검토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대학은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여성 응시자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남성과 동일한 정자세로 변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