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언론 공개…"봉준호, 변장하고 관객 틈에 끼어보겠다"
"52시간 표준 근로, 영화계 너머 TV로 확장되길"
"칸 나눴던 '설국열차' 계급, 가족 단위로 수직 설계"
"부자와 빈자는 평소 동선 안섞여… 운전수, 가정교사라면 다를 것에 천착"
"서로 존엄 지키면 '기생'은 '상생'으로 나아갈 것"

28일 오후 ‘기생충'이 한국 언론에 첫 공개됐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옥자' 이후 2년 만에 보이는 신작이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송강호와 4번째 호흡을 맞췄다.

28일 언론에 공개된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대로 ‘도무지 멈춰세울 수 없는 맹렬한 희비극'이었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누군가 누구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세상.’ 작가 봉준호는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이 한데 뒤엉켜 계단 아래로 곤두박질처질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질 지 선명한 우화로 그려낸다.

봉준호가 위대한 영화 동료라 칭했던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의 유전자를 간직한 채 이 ‘반지하 백수 가족'의 행복한 나태와 기지, 돌발적 분노를 냄새와 공기까지 치밀하고 표현해낸다. 기우와 기정 남매를 연기한 최우식과 박소담은 영화에 젊은 기세와 리듬을 선사하며, 부자와 빈자의 계급적 경계를 명랑한 ‘콩글리시'로 로 뭉개는 천진난만한 조여정은 이 배우의 앞날에 더 많은 기대를 품게 한다.

그동안 ‘괴물' ‘옥자' 가족에는 없었던 모성이 충숙(장혜진 분)의 합세로 보강되자, 이 ‘기생충 가족’은 기존 봉준호 영화의 소동극과는 차원이 다른 왕성한 번식력과 생명력까지 장착한다. 조여정과 장혜진과 이정은… 세 여성이 안주인과 가정부로 얼키고 설킬 때, 이 저택의 진짜 호스트는 과연 누구인가 관객은 미로같은 질문과 대면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 대해 "한강에 괴물이 살고 기차가 눈속을 달리듯이, 어느날 가족이라는 화두가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했다. "부자 4인, 빈자 4인 가족이 얽히는 기구한 이야기가 떠오른 건 2013년 영화 ‘설국열차'를 찍을 때 였다. ‘설국열차'는 기차칸의 앞과 뒤를 계급으로 가르며 나아갔는데, 이 똑같은 질문으로 현대인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으로 펼쳐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은 엄청난 취재진과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긴장한 기색을 보였지만, ‘칸의 영광'과 함께 쏟아지는 국내 언론의 관심에 반복해서 감격과 감사를 표했다.

기자시사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박소담, 장혜진, 조여정, 이선균, 송강호. 봉준호 유니버스에 탑승한 배우들.

다음은 감독과 배우의 일문일답.

-‘기생충'은 영화 촬영 내내 52시간, 표준근로 시간을 지킨 것으로도 알려져서 더 많은 관심을 모았다.

"내가 선구자적으로 특별하게 실행한 게 아니었다. 2014년~2015년 경부터 영화 산업에 표준 근로 계약이 서서히 진척됐고 2017년부터는 많이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흐름에 따라 따라 움직였다. 더우기 ‘설국열차'와 ‘옥자'를 하면서 같은 형태의 환경과 조항에 맞춰 일하다 와서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TV드라마도 촬영장도 그런 추세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 아카데미 시절에 만들었던 독립영화 ‘지리멸렬'도 양극화, 사회 고위층의 독특한 기행을 그렸는데, 지속적으로 그 주제에 천착하고 있나?

"‘지리멸렬'은 25년 전 영화다(웃음). 부자와 빈자의 상황을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영화적으로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풍부한 희노애락의 감정을 지닌 배우들에게 기댄 면이 크다. 송강호 선배의 말대로 요즘에는 빈부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 존엄을 건드리는 데 더욱 민감한 것 같다. 서로 간에 예의를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상생과 공생을 꿈꿀 수 있지 않나 싶다."

-20대인 최우식, 박소담 배우의 에너지가 좋은데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감독인 저보다 두 배우가 더 잘 (이 사회의 공기를)알고 있었다. 잘 되기를 바라지만 녹록치 않고 거기서 오는 슬픔, 불안감, 두려움 등을. 마지막 부분에 최우식 배우의 노래가 깔리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나의 말의 일부였다."

-한국어를 마음껏 쓸 수 있는 ‘한국영화'를 오랜만에 작업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방언 터지듯이 현장에서 즉흥적인 대사를 많이 주문했다. 내가 주문하면 배우들이 강스파이크로 받아줬다.

코믹요소에 환타지까지 결합한 영화 ‘기생충'. 이제까지 봉준호 영화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봉준호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주요 키워드로 삼은 것은 ‘선과 냄새’다. IT로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은 기존의 세습 부자들처럼 대놓고 ‘갑질’ 행세를 하진 않지만, 매뉴얼화된 친절을 전시하면서도 은연 중에 ‘선을 넘는 것'과 ‘냄새가 섞이는 것'을 못견뎌한다.

봉 감독은 이에 대해 "부자와 빈자는 비행기의 퍼스트클래스와 이코노미 칸이 분리되듯 서로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깝게 섞일 일이 없다. 하지만 운전수와 가정부, 가정 교사만큼은 가까이서 서로의 내밀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데 착안해서 이 영화의 스토리로 진척시켰다"고 설명했다.

송강호는 1시간 가량 이어진 기자 회견 내내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 부드럽고 의연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하며 이 영화 가족의 리더 임을 암시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장르 영화의 특성을 갖추면서도 혼합과 변주가 능란하다. 낯설고 두려웠지만, 이 앙상블이 잘 설득되도록 노력했다. 냄새와 선 등 보이지 않는 요소에 집중해서 영화적 재미와 생각할 거리들을 챙겨가시길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최우식은 힘들었던 장면으로 "극중 아버지인 송강호에게 연기 강습을 시키는 신(scene)"을 꼽았다. "감히 제 나이에 송강호 선배에게 연기 지도를 하다니(웃음)...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해 폭소를 유발했다.

"그 검은 상자를 저와 함꼐 열어보시겠어요?"라는 미스터리한 대사를 던졌던 박소담은 "처음으로 내 입에 붙는 말, 내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하게 해준 봉 감독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칸은 이제 과거가 됐고, 오직 자신에게는 한국 관객만이 궁금하다"라며 "티켓을 사서 정성스럽게 극장을 찾는 관객을 만나러 가벼운 변장을 하고 객석으로 숨어들겠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계급, 소동, 가족, 유머… 봉준호를 이루는 모든 요소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