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더 모던' 소믈리에 김경문(36)씨는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MS)'다. 2016년 세계 각국 소믈리에 수백 명이 응시해 마지막 실기 시험을 치를 자격이 60명에게 주어졌다. 최종 합격자 세 명 중 하나가 김씨였다. 앞서 2012년 한국계 미국인 윤하씨가 MS를 취득했지만,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김씨가 처음이다.
MS는 세계 와인의 최고 전문가다. 영국 와인주류연합회와 호텔레스토랑연합회 등이 와인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한 자격 제도로, 매년 시험을 치러 극소수만 합격한다. 하도 어려워 '와인 고시'로 불리기도 한다. 1969년 처음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시험을 통과해 MS 배지를 단 소믈리에는 지구상에 257명밖에 없다.
김씨는 MS를 통과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다. 27일 서울에서 만난 김씨는 "와인책과 암기 카드를 손에 쥐고 일했다"고 했다. "손님이 와인을 주문하면 '어떤 포도 품종으로 어떻게 만들고 어떤 맛과 향이 나는 와인'이란 식으로 암기하고, 와인을 따서 서빙하기 전 시음하며 확인했죠. 12시간 레스토랑 근무가 끝나면 녹초가 되지만 집에 돌아와 밤에 공부하고,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지하철 타고 출근하며 책을 봤어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 요리에 관심 많아 미국 명문 요리 학교 CIA에 진학했다가 와인에 빠졌다. "CIA에서는 요리뿐 아니라 와인과 서비스(접객)도 배웁니다. 요리에 딱 맞는 와인을 곁들였을 때 음식 맛이 배가되더군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거기 어울리는 와인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경험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했어요." 김씨는 요리사에서 진로를 틀어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며 졸업했다.
2008년 김씨는 군인 출신으로 국내 소믈리에 국가대표 선발대회 아마추어 부문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CIA 다니다 병역을 마치려 귀국해 해군에 입대했어요. 해군작전사에서 어학병으로 복무하던 중 재미 삼아 나갔는데 예상찮게 1등을 차지해 당황했지요."
김씨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건 뉴욕에 소개할 전통주를 찾기 위해서다. "CIA 동기 임정식 요리사가 2011년 뉴욕에 '정식당'(미쉐린 2스타)을 오픈할 때 합류했어요. 식당을 찾은 외국인 손님들이 '이 음식과 어울리는 한국 술은 뭐가 있느냐'고 묻는데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한식을 기반으로 한 음식이니 한국 술을 찾는 게 당연한 거였죠. 소믈리에로서 준비가 안 됐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김씨는 한국 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한국에 들어와 전국 방방곡곡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전통 소주·청주·막걸리의 경우) 쌀, 누룩, 물 단 세 가지 재료만으로 그토록 다양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한식뿐 아니라 세계 어떤 음식과도 어울릴 수 있습니다. 한국 술은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만한 경쟁력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