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복막 투석실 모니터 속에 빨간색·녹색·노란색의 갖가지 아이콘과 그래프, 수치들이 빼곡히 떴다. 김동기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우리 병원에서 맡고 있는 성인 신장병 환자 11명의 복막 투석 상태를 보여주는 화면"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복막투석실에서 김동기 신장내과 교수가 환자들의 복막 투석 상태를 살피고 있다. 환자가 집에서 복막 투석을 하면 그 결과가 병원으로 자동 전송된다. 투석이 제대로 안 됐다는 표시가 뜨면 환자를 병원으로 불러 상태를 살핀다.

'복막투석'은 신장(콩팥)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된 환자들이 배 속(복강)에 투석액을 넣었다가 빼면서 몸속 노폐물과 수분을 함께 제거하는 치료 행위다. 평소 배에 가느다란 관을 꽂고 살면서, 매일 정해진 횟수만큼 관에 투석액을 넣고 일정 시간 뒤에 다시 빼낸다. 병원에 와서 해야 하는 혈액투석과 달리,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어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만성 신장병 환자가 많이 선택한다.

가깝게는 서울·경기, 멀게는 대구·부산에 사는 환자들이 자기 집에서 투석하는 상황이 김 교수가 들여다보는 모니터에 자동으로 떴다. 환자가 일일이 입력하는 게 아니라 자동복막투석기가 알아서 전송한 수치다. 김 교수가 환자 11명 중 한 명의 투석 결과를 유심히 살폈다. '경고'를 의미하는 빨간색 깃발 아이콘이 떠 있었다. "투석액이 배 속에 머무는 시간이 짧았네요. 이런 상태가 며칠간 지속되면 환자에게 전화해서 '병원에 한번 와보라'고 합니다."

서울대병원 모니터링 환자 26명뿐

김동기 교수는 "원격 모니터링을 이용하면, 만성 신장병 환자가 자기도 모르게 병세가 악화돼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5월에도 서울대병원 의료팀이 투석액이 오가는 관이 막히기 시작한 한 환자를 원격 모니터링으로 포착해 병원으로 불렀고, 관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이물질을 제거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우리나라에서 원격 모니터링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복막투석 모니터링의 경우 서울대병원이 시범 사업으로 하고 있다. 모니터링 혜택을 보는 환자도 26명(성인 11명, 소아 15명)에 불과하다.

현행 의료법은 원격 진료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문제가 있으니 병원에 오라"고 전화하는 것까지는 법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이라도 더 나가면 불법이다.

의료계는 "원격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원격 의료도 차차 허용하자"는 이들과 "원격 의료를 허용하면 동네 병원 다 망한다"고 반대하는 이들로 갈라져 있다. 그러니 개별 병원 입장에선 원격 모니터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부담스럽다. 한 대학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의사가 환자에게 '기기 설정을 이러저러하게 변경하라'는 정도의 말도 전화로는 못하고,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한다"고 했다.

◇삽입형 제세동기 원격 기능 꺼놓고 삽입

심지어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한 기기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모니터링을 못하는 분야도 있다. 현재 삽입형 제세동기 등 심장 질환 환자들이 몸에 넣고 있는 장치에는 환자의 맥박이나 신체 내 전기 저항값(폐에 물이 찼는지 알려주는 지표)을 원격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원격 전송 기능을 끄고 환자에게 삽입한다. 2017년에만 5641건의 삽입 시술이 이뤄지는 등 국내에서 수만명의 환자가 몸에 이러한 기계를 품고 살아가는데, 원격 의료를 금지한 의료법에 걸릴까 봐 이런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벤츠를 사서 티코처럼 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보편화된 기능인데, 유독 우리나라만 이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해지면 환자가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까지 방치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고령화 등으로 심장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원격 모니터링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환자 원격 모니터링은 현행 법·제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복지부가 이제 와서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판정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앞으로도 원격 모니터링이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