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73) 미국 대통령의 인종 차별적 발언이 고삐 풀린 듯 난사되면서 '내년 재선을 위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도자의 비윤리적인 행위가 어떻게 선거 승리로 이어진다는 것일까. 이는 미국을 반쪽 내다시피 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 시각) 흑인 민권운동가인 알 샤프턴(64) 목사에게 "알은 사기꾼으로, 백인과 경찰을 싫어한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앞서 민주당의 흑인 하원의원 일라이자 커밍스(68)를 "잔인한 불량배"로, 커밍스의 지역구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쥐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모욕한 데 이은 것이다. 최근 민주당 유색인종 여성 하원의원 4명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해 의회가 규탄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그는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엘리트 집단의 행동 규범이자 보편적 도덕률이 된 '정치적 올바름(PC)', 즉 소수자 차별 금지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프랑스 젊은이의 '68혁명'에서 시작, 미국으로 건너와 1980년대 대학가와 문화계에서 페미니즘과 인권 운동의 형태로 확립돼 2000년대 한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PC의 영향으로 남자(man)를 기준으로 한 영어 명사들이 성중립적으로 바뀌면서 'chairman(회장)'은 'chairperson'으로, 'fireman(소방관)'은 'firefighter'로 바뀌었다. 불특정 사람을 가리키는 'he(남성형)'란 대명사는 'he or she(여성형)'로 바꿔 쓰다가, 아예 'xe'나 'th(they의 단수형)' 같은 새로운 중성 대명사도 탄생했다. 흑인은 'negro' 같은 노예제 시절 표현 대신 'African-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키가 작다는 표현은 'short'에서 'vertically challenged(수직적으로 도전받는)'로 바뀌었다. 동물권리단체까지 가세해 '애완동물(pet)'은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 됐다.
이런 흐름이 지나쳐 극단적인 논리와 주장까지 횡행하고 있다. PC운동의 본산인 미 대학가에선 남자 교수가 여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주면 '성차별(sexism)'로, 소수인종 우대로 우수한 백인 학생이 밀린다고 지적하면 '인종차별(racism)'로 몰리기 일쑤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폭력적이라며 'Merry Christmas(즐거운 크리스마스)'를 'Happy Holiday(연휴 잘 보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 부모가 자녀에게 타고난 성별대로 성정체성을 인식하도록 요구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자 일부 진보 진영이나 학계에서도 억지스러운 PC를 '예의를 가장한 파시즘' '한마디로 ×소리'라고 비판하기 시작했고,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PC는 불관용의 한 형태이자 강자의 자기 옹호"라고 했다.
미국 심리학계 등에선 흑인이나 무슬림, 여성, 난민 등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 논리가 주류가 되면서 졸지에 '잠재적 가해자'이자 '을'이 된 백인 저학력 남성 등은 수십년째 질투와 박탈감, 경멸을 억눌러왔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권력과 부를 모두 쥔 트럼프 대통령이 PC라는 터부를 깨고 백인의 집단 콤플렉스를 '실체적 정서'로 대변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대신 벌이는 구도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스스로를 PC라는 '폭군'에 저항하는 '진실'의 수호자로 포장하고 있다"고 했다. CNN은 "트럼프가 PC에 대한 분노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라고 했고, 영국 가디언은 "미국의 '문화적 내전' 양상"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PC 공격을 정치 자산으로 활용한 지는 오래다. 오바마 해외 출생 의혹 제기(Birtherism)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15년 공화당 대선 경선 토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나라를 죽이고 있다" "무슬림 테러 용의자들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건 오바마의 PC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하면서 지지율이 폭등했다. 취임 후에도 무슬림 입국 금지 조치, 중남미·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똥통(shithole)' '강간범의 나라' 발언, 여성에 대한 외모 지적이나 성추행 전력을 과시하는 듯한 막말로 지지자들의 열광을 얻었다.
트럼프는 '증오 범죄'에 속하는 이런 반(反)PC 선동이 미 수정헌법 1조에 명기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정당화한다. 최근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선 미 유권자의 70% 이상이 "현재 미국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며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맞는지 틀렸는지 눈치 보기가 싫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41)는 최근 '좌파는 어떻게 증오를 이용해 잘나가고 우리에게 침묵을 요구하는가'란 책을 내고 '정치적 올바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직업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주장. 1960년대 서구 진보 학계에서 태동한 문화적 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 역사 수정주의 등 반(反)문화 운동에 뿌리를 두며, 1980년대 미국 대학과 대중문화계를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인권 운동 등의 형태로 세계에 확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