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애플의 팀 쿡 CEO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트럼프는 2016년 공화당 대선 주자였을 당시 테러범 수사를 위한 아이폰 잠금장치 해제를 거부한 애플을 강도 높게 비난했고, 지난 3월엔 트럼프 행정부의 환경 정책과 이민 정책을 공공연하게 비판해 온 쿡의 이름을 공식 석상에서 "팀 애플"이라고 잘못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트럼프가 21일(현지 시각) 쿡을 "훌륭한 CEO"라고 치켜세우면서 둘의 관계가 180도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문제는 그(팀 쿡)의 좋은 라이벌인 삼성은 한국에 있어 관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삼성은 타격을 받지 않고 (애플은) 타격을 입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문제와 관련해 단기적으로 팀 쿡을 돕겠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팀 쿡에 대한 평가도 덧붙였다. 트럼프는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면) 내게 전화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쿡 CEO가 훌륭한 경영자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면) 나가서 매우 비싼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반면, 쿡 CEO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직접 전화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기업 CEO와 직접 통화한다는 건 그만큼 기업에 열려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로비가 대통령에게 곧장 전달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도 쿡이 지난주 뉴저지 트럼프 소유 골프 클럽에서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물리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애플 제품이 타격을 입는 반면, 한국에서 생산하는 삼성 제품은 관세의 영향을 받지 않아 불공평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
미 언론은 쿡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가 갑자기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자신에게 도와 달라며 매달리는 쿡의 태도가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는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을 자극한 데 기인한다고 해석한다.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폭스뉴스도 "백악관에 갑자기 쿡의 팬이 한 명 생겼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라면서 "쿡이 트럼프가 총애하는 CEO가 된 것은 그가 트럼프에게 전화를 했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트럼프가 경기 침체 공포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미·중 무역 전쟁을 꼭 치러야 할 일이라고 옹호하면서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the chosen one)'이라고 자처한 점 역시 스스로에 대한 과대망상이 반영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2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내 무역 전쟁이 아니다. 많은 다른 대통령들이 오래전에 했어야 할 일"이라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내가 그것을 떠맡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 전쟁이 신(神)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이며, 자신은 그 대업을 이루기 위해 선택받은 인물이라는 의미다. 롤링스톤지는 "트럼프가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꼬집었고, 폴리티코는 "예수를 '선택받은 자' '구세주'로 보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트럼프의 발언이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의 자화자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동산 사업가 시절에는 자신의 사업 수완과 재력을 부풀려서 자랑해 왔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이룬 게 많다" "미국 경제는 지금이 최상이다" 등 수시로 자아도취적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엔 이것이 이른바 '메시아 콤플렉스'로까지 발전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21일 보수 성향 라디오 진행자 웨인 A 루트의 발언을 인용해 "루트가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트럼프를 마치 이스라엘의 왕(King of Israel) 신의 재림(second coming of God)인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서 "루트, 좋은 말을 해 줘서 고맙다"고 적었다. CNN은 트럼프가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지칭한 데 대해 "그는 표면적으로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의 농담은 그가 믿는 진실로 가득 차 있다"면서 "트럼프는 정말로 그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