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선 한국 정부의 대일(對日) 공격 선봉에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서 있다. 원래 그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통상 전문가다. 그런 그가 최근 일본을 향해 강경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외교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미국에 "자제해달라"고 맞받고 나온 배경에도 김 차장의 강경 기조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실제로 김 차장은 요즘 휴대전화 수신 대기 신호음(컬러링)을 애국가로 설정해놓았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로 시작하는 애국가 2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공세('바람'과 '서리')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철갑'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지난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처음 발동된 직후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죽창가'(竹槍歌)를 거론하며 반일(反日) 최전선에 섰다면, 그가 청와대를 떠난 후 그 바통을 김 차장이 넘겨받은 모양새다.
◇통상전문가 김현종의 克日 캠페인
현 정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에 발탁된 김 차장은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28일 지금 자리에 임명됐다. 당시만 해도 외교가에선 통상전문가로 경력을 쌓아온 그의 안보실 2차장 기용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안보실 2차장은 외교·안보 컨트럴타워 역할을 하는 자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미국 유학파 출신인데다 통상 교섭 과정에서 쌓은 대미(對美) 네트워크가 강하다고 알려졌다. 그렇다 해도 외교가에선 '영어 잘 하는 외교 테크니션' 정도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김 차장이 이후 보여준 언행을 보면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조국 전 수석의 빈 자리를 대신해,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한 '자주파(自主派) 이데올로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빈번한 발언을 내놓던 조국보다 오히려 간헐적이지만 직접 마이크를 잡고 강성 발언을 내놓는 김현종의 메시지 강도가 훨씬 세게 다가온다"고 했다.
김 차장은 조 전 수석만큼 소셜미디어를 활발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최근 청와대 브리핑 때나 해외 출장 길에 오를 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면 정통 외교관의 그것으로 보기엔 그 수위가 훨씬 높다. 그에 대한 이런 인상은 무표정하면서도 때로는 무언가엔 대한 적대감을 꾹 참고 있는 듯한 표정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인사도 있다.
실제로 지난 7월초 일본이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 조치를 꺼내든 이후 김 차장의 대일(對日) 메시지는 시간이 갈수록 강경해졌다. 김 차장은 지난 7월 17일 외신 기자단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할 때만 해도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에 비춰볼 때, 두 나라는 마치 19세기에 사쓰마와 조슈가 그랬던 것처럼 협력해야 한다"면서 일본에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차장이 이 발언을 내놓은 시점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언급한 지 나흘 뒤였다. 조 전 수석은 김 차장 발언 다음날에는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도 했다. 김 차장은 그 즈음 구한말 정한론(征韓論·한국 정복론)의 대명사로 꼽히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까지 거론하며 "그가 살아 있다면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 에 대한 나의 평가에 동의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안다는 조 전 수석이 '항일(抗日)' 선동이라 불릴 정도로 기세를 올릴 때, 김 차장은 오히려 일본과의 협력을 거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 차장의 이런 기조는 일본이 8월2일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하자 급변했다. 김 차장은 그날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대해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윈스턴 처칠은 생전에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라는 말을 남겼다"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 차장은 이날 "일본은 우리의 평화 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는 장애를 조성했다"며 일본을 '반(反)통일 외세'로 규정하는 듯한 말도 했다. 그는 그 근거로 "일본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했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제재·압박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국민의 전시 대피 연습을 주장하는 등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다"고 했다.
김 차장은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는 "국가적 자존심 훼손" "외교적 결례"라는 표현을 동원해 일본을 비판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시행에 들어간 8월 28일엔 일본을 향해 "적대국"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아베 총리는 우리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두 번이나 언급하며 우리를 적대국 취급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수반(首班)을 직접 겨냥했다.
◇日서는 "김현종이 文대통령에 대일 강경론 제안"
일본 조야에서도 김 차장이 한국 정부의 대일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 특파원 출신인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월간지 분게이순쥬(文藝春秋) 9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최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을 움츠려 들게 만드는 사람이 김 차장"이라며 "일본에 대한 강경한 의견을 계속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키노 위원은 "김 차장은 사실상 안보 정책의 총책임자"라면서 "외교부 과장급에게도 직접 지시한다"고도 했다.
실제 김 차장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전까지 정한론의 요시다 쇼인까지 거론하며 외교적 해결 방안을 찾자는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이후엔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는 8월12일 라디오에 나와 "아베 신조 총리 이름의 한자 '신(晋)' 자는 에도 막부를 무너뜨린 사무라이 '신사쿠 다카스키'와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며 "그 사람들이 주장한 게 정한론"이라고 했다.
한달 사이에 정한론의 주역들을 정반대 맥락에서 언급한 김 차장의 태도 변화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 강행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김현종의 원래 속마음이 '반일'에 가까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 차장은 노무현 정부 때 3년(2004년7월~2007년8월)간 통상교섭본부장을 했다. 그는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한 당사자다. 그러나 그는 당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제2의 한·일 경제병합'이 될 것으로 보고 이를 반대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출간한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서 2006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일본의 FTA 정책은 메이지 유신 시절 요시다 쇼인의 조선 침략론, 그리고 그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차장은 이 책에서 "일본 관료에게 일본 FTA 정책의 기본 논리가 무엇인지 묻자 '일본 상품, 특히 부품·소재를 아시아 교역국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면서 "부품·소재 분야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감안할 때, 일본은 한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예상보다 빨리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남한처럼 북한도 일본 부품에 의존하게 만들고도 싶을 것"이라고 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으로선 김 차장이 7월에 보였던 대일 유화론을 '다테마에(建前·겉마음) ', 8월 들어 보이는 강경론을 '혼네(本心·속마음)'로 볼 것"이라고 했다.
◇노련한 외교전략가인가 자주파 근본주의자인가
국가 대(對) 국가의 외교 관계는 정책 결정 라인에 있는 인사의 개인적 경험이나 인식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김 차장은 학창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미 주류 사회에 네트워크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스포츠광이라는 김 차장은 미국프로풋볼(NFL) 등 주요 스포츠 최신 동향을 파악해 미국 주요 인사들과 대화를 이어간다고도 한다. 노련한 전략가적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김 차장과 같이 일했던 한 전직 외교관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는 "김 차장은 일본에 대해서는 감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때가 많이 있었다"며 "그의 사무실 책상에 일제의 '난징대학살(nanjing massacre)'을 다룬 영어 책자가 올려져 있었던 것도 특이했다"고 했다. 내면에 자주파적,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반일 근본주의자적 성향이 도사린 것 같다는 얘기다.
김 차장은 주일본 대사관에서 3등서기관으로 근무(1963~1971년)한 부친(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을 따라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다. 이후 중·고교, 대학, 대학원은 모두 미국에서 마쳤다. 한 전직 외교관은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면 그 나라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와 싫어하게 되는 경우로 나뉘는데, 김 차장은 일본에 대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 차장은 학력(學歷)이나 직업 경력은 세계인의 궤적을 밟았지만 동시에 민족주의 성향도 강화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차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고들빼기김치라고 한다. 그는 자기 책에서 "그(고들빼기김치) 맛을 경험한 것은 십대 무렵 전남 순천 할머니 댁에서였다. 하얀 쌀밥과 함께 처음 먹어본 독특하고 고유한 고들빼기김치 맛은 유학시절을 거쳐 해외에서 수십 년을 지나는 동안 늘 기억에 생생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가 통상 정책을 수행하며 본능적으로 내가 목적한 바는 내 기억에 새겨진 고들빼기김치의 참맛을 세계인이 경험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썼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김 차장은 그 지역 공관에 젓갈, 고추장 같은 한국 음식을 꼭 챙겨 보내주더라"고 했다.
미국와 일본을 상대로 자존심을 지키는 듯한 그의 최근 언행을 지켜본 외교 전문가들은 "민족주의적 엘리트주의자 성향도 엿보인다"고 했다. 김 차장은 지난달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한 데 대해 "우리한테 진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전략물자는 '손 한 줌' 된다"고 했다. 김 차장은 또 "미국을 방문해 중재란 말을 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알아서 해라'(라는 태도를 전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 가서 한·일 갈등 중재를 요청했느냐고 묻자 "뭘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제가 글로벌 호구가 되는데⋯ "라고도 했다.
김 차장은 미국 상류층이 밟는 학력 코스를 밟았다. 미 동부 명문 윌브럼앤드먼슨(Wilbraham & Monson Academy) 고교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컬럼비아대를 졸업했다. 미 변호사 자격을 딴 뒤 유명 로펌과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일했다. 그런 그가 일본이나 미국을 향해 내뱉는 강경 메시지는 오랜 외국 생활에서 은연 중에 몸에 벤 이방인으로서의 배타성이 결부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종의 자주파 노선의 향방은
김 차장에 대한 이런 평가가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그가 현 정권의 이른바 '자주파' 외교 노선을 끌고 가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김 차장은 남들과 조화롭게 지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공직에서 접해본 그는 자기 고집이 강하고 조직 내 주류 그룹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다"며 "인사 문제 등에서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의자를 걷어차기도 했다"고 했다.
통상 교섭에 익숙한 그가 외교·안보를 통상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김 차장이 유엔대사를 제외하면 안보 이슈를 깊게 해봤다고 할 계기가 없었다"면서 "유엔이 다루는 다자 차원의 안보 논의와 한·미 관계, 한·일 관계 등 양자 안보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또 "통상이 전제하는 협상은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 안보에서는 상호 신뢰·교감, 기초적 가치에 대한 공유가 중요하다"면서 "아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부동산업자의 방식으로 안보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통상 협상 방식을 안보 분야에 대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림에도 문 대통령이 그를 중용하는 배경을 두고 여권에선 "싸움닭 기질"를 꼽는 사람이 많다. 한 여권 관계자는 "통상 분야에서 오래 일한 김 차장은 복잡한 현안을 간단하게 정리해 협상에서 이기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데 익숙하다"며 "김 차장이 안보 분야에서도 비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단순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문 대통령과 김 차장이 '자주'란 가치에서 인식이 일치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군 장성 진급 신고식에서 식민지와 2차 대전, 6·25 등 역사를 언급하면서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정신을 가지라"고 일곱 차례나 강조했다. 그런데 김 차장도 최근 지소미아 파기 결정으로 인한 한미동맹 균열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에 "국방예산 증액, 군 정찰위성 등 전략자산 확충을 통해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해나갈 것"이라고 했다.일본은 물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여가겠다는 뜻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문재인 정부 역시 노무현 정부 때처럼 자주와 동맹을 두 축으로 놓고 있다"며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과 맞물려 시간이란 변수가 김 차장에게 도전에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차장은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잇따라 실망과 우려를 공개적으로 나타내 한미동맹 균열 우려가 제기되자 지난 23일 브리핑에 나서 "우리의 지정학적인 가치와 안보역량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지금 국제 질서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해 있다. 우리 국익을 위한 외교적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며 지소미아 파기를 비판하는 미국에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차장의 이런 언급에 대해 "현재 한국을 둘러싼 외교 환경이 악화 일로인 점을 감안하면 감상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