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개입 없는 '비건 푸드·뷰티' 하루 체험기
콩·곤약으로 만든 삼겹살, 꽃잎 추출 미스트…
대한민국 비건族, 10년새 10배 늘었다지만
접근성·영양 문제는 여전히 지적되는 한계
배우 임수정,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미국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
이들의 공통점은 고기를 먹지 않거나 가급적 멀리하는 채식주의자, 그중에서도 철저히 채소와 과일만 먹는 ‘비건족(族)’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을 ‘비건의 해(The year of the vegan)’라고 전망했다. 과거엔 ‘유난스러운 취향’ 정도로 여겨졌던 비건은, 최근 들어 동물권과 환경보호 등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동물을 위해 다소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비건의 삶은 어떨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인턴기자 2명은 ‘먹는 비건’부터 ‘바르는 비건’까지, 비건의 하루를 체험해봤다.
◇‘삼겹살·양념고기·어묵’ 종류도 다양한 비건푸드… 맛은 ‘음…’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비건은 채소와 과일 밖에 먹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비건 만찬’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비건 삼겹살과 마라로 양념된 콩고기, 비건 어묵 등 이었다. 세 메뉴는 모두 인터넷을 통해 구입, 이틀 후에 도착했다. 가격은 마라콩고기 200g, 비건 삼겹살 330g, 비건 어묵 250g에 총 1만7500원이 들었다.
마라콩고기는 콩을 갈아 고기처럼 굳힌 콩고기를 최근 유행하는 중국 향신료 마라로 양념한 음식이다. 생김새는 얇게 저민 소고기를 마라볶음으로 만들었단 느낌이었다. 겉모습은 단단해보였지만 막상 씹으니 쫀득거리는 것이 고기의 식감과 얼추 비슷했다. 어색한 콩고기의 맛을 강한 마라향이 잡아줘서 꽤 먹을 만했다. "대체육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이런 음식이 있다면 큰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는 평이 나왔다.
비건어묵은 생선살과 밀가루로 만드는 일반 어묵과 달리 채식혼합전분, 곤약분말 등으로 만들어진다. 일반 어묵이었다면 포장을 뜯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퍼졌을 테지만, 비건어묵은 신선하고 상쾌한 냄새가 났다. 물에 데치자 기름이 흘러나오는 것은 여느 어묵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생선 맛이 첨가되지 않아 밍밍했고 어묵보다는 곤약과 같은 느낌이 강했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았던 메뉴는 비건 삼겹살. 콩고기에 곤약 등으로 만들어진 가짜 비계를 달아놓은 모습이었다. 모양은 삼겹살을 흉내냈으나, 맛은 낯설었다. 가짜 비계는 쫀득한 식감을 내긴 했지만, 시루에서 갓 쪄낸 술빵 같은 냄새와 맛이 났다. "고기라기 보다는 밥알을 오래 씹으면 나는 탄수화물 특유의 단맛이 강하다. 생긴 것과 맛이 조화가 되지 않는 이상한 느낌"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환경·건강 챙기는 비건 화장품…"막상 쓰려니, 찾기 어렵다"
점심 식사를 끝낸 뒤인 오후 3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화장품 공방을 찾았다.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으면서 동물실험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곳이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장품 중 동물성 원료로 만들어지는 것은 의외로 많다. 예로 틴트, 립스틱 등의 구성 성분인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은 닭벼슬에서 추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수출을 하는 화장품의 경우 ‘중국식품약품관리감독총국(CFDA)의 위생허가증’을 기본적으로 취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물실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이날 공방에서 만들어 볼 화장품은 미스트(mist)였다. 미스트는 ‘정제수’에 기능과 영양성분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는 ‘첨가물’, 제품의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를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다. 모든 재료들은 식물에서 추출한 비건 재료였다. 정제수는 로즈마리·알로에·시아버터 등 식물성 원료를 쪄서 맺히는 오일로, 첨가물 재료도 허브추출물이나 식물성 글리세린 등으로 사용됐다. 마지막으로 넣어줄 방부제도 할미꽃과 각종 열매 등에서 추출됐다. 공방에서 준비해준 재료를 정해진 방법대로 섞으니 손쉽게 화장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공방에서 탄생한 비건 미스트를 3일 간 얼굴에 뿌려 봤다. "바를 때마다 진한 화학품 냄새가 아닌 흙내가 나 괜히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접근성 문제만 아니라면 색조 화장품도 비건 제품으로 바꿔 쓰고 싶다"는 평이 나왔다. 비건 화장품은 비단 비건족 뿐만 아니라, 민감한 피부를 지녀 순한 화장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각광 받고 있다. 이 공방 운영자 김희성(51) 대표는 "피부가 약한 아이들이나 아토피를 가진 분, 암 투병 중 치료를 위해 계면활성제를 줄여야 하는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비건 수요, 10년만 10배 성장했지만…접근성·영양 문제는 여전
한국의 비건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은 2018년 기준 100~150만 명이 국내 채식 인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2~3%를 차지한다. 2008년 15만 명이었던 채식 인구에 비교하면, 10년 만에 약 6~10배로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비건 인구의 성장 속도에 비해 비건 제품의 접근성은 아직 열악한 편이다. 비건푸드의 경우 ‘대체 육류(meat substitute)’ 등의 개발로 그 메뉴가 다양해지고는 있지만,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 온라인 중심이다. 오프라인 채식 전문 식당은 2010년 150여 곳에서 지난해 350여 곳으로 8년 동안 2배 이상 늘긴 했지만, 비슷한 기간 10배 정도 늘어난 수요에 비하면 미미하다.
비건 화장품도 접하기 쉽지 않다.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가 2017년 8월 공개한 ‘착한회사 리스트’에 따르면, 국내 판매를 위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국내 화장품업체는 81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동물성 원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중국 수출도 하지 않는 ‘완전 비건 화장품’은 단 26곳에 불과했다. 이 마저도 온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비건 푸드는 영양학적으로도 논란이 있다. 인위적으로 맛을 만들어내려다 보니 탄수화물과 나트륨, 당의 비율은 기존 식품보다 높고 단백질 비율은 낮다. 또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워, 일반 제품에 비해 비싼 가격도 아쉬움으로 꼽혔다.
신경옥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시중에 판매되는 콩고기 같은 경우 전분이나 탄수화물 종류를 응집해 만들기 때문에 영양소가 치중돼 있다"며 "향후 몇년 안에 영양 면에서도 고기와 차이가 없는 식물성 단백질의 비건 푸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