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풍요로운 베이비붐 세대 은퇴
여유 있고 활기찬 인생 2막
디지털 익숙하고 취향 확고해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영업 부문 상무를 지내다 지난해 1월 은퇴한 권하진(63)씨는 요즘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출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 허겁지겁 일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고,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권씨는 매주 화요일엔 수채화 수업을 듣는다. 퇴직 직후부터 집필을 시작한 ‘신중년, 내 인생의 선물’이라는 책을 올해 초 출판하기도 했다. 50세 이상 은퇴자를 위한 책 쓰기 강연의 강사로도 활약했다. 1984년부터 꼬박 34년간 다닌 직장을 나온 후 권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씨는 "퇴직 직후엔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싶어 심란했는데,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 무척 좋다"고 말했다.
금융 회사에서 부장까지 지내고 2017년 퇴직한 오종진(60)씨는 최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격증 수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은퇴 후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기사(태양광) 등 친환경·농업 관련한 자격증을 3개나 땄기 때문이다. 오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친환경·농업 관련 분야는 죽기 전에 꼭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였다"고 했다.
오씨는 나머지 시간에는 아내와 백화점을 구경하고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 또는 당구를 친다. 이른 출근 시간과 잦은 야근 때문에 그동안 누리기 어려웠던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는 "집 앞 텃밭에서 상추·고추·깻잎·가지 등 가족이 먹을 채소를 기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14억원짜리 타운하우스를 팔고 수원시 광교 신도시의 9억원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남은 생을 이렇게 즐겁게 살고 싶다"면서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진행되면서 권씨와 오씨처럼 퇴직 후 활기찬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중장년층, 액티브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퇴직 후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은퇴 후 노년을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는 기간으로 여기던 이전 세대 노인과는 다르다. 국가별로 액티브 시니어의 핵심 연령대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국내의 경우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핵심 연령대로 본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 인구의 약 15%를 차지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는 퇴직, 은퇴를 끝이 아닌 제2의 출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과거엔 은퇴 시기인 환갑을 생의 마지막 시기로 봤지만, 지금은 누구도 60세에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시점부터 사망 시점까지 시간이 많이 길어지다 보니, 은퇴 후 노년기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희석됐다는 것이다.
은퇴자들이 직장을 다닐 때는 배우지 못했던 취미와 기술을 배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악기 연주나 그림 그리기, 운동은 물론 글쓰기와 사진 촬영까지 배움의 영역은 다양하다. ‘국민연금공단 신중년 노후 준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정태욱 국민연금공단 노후 준비 전문 강사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많았던 작년부터 수업 분위기가 더 활기차지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 수업 참여에 적극적인 어르신이 많아졌고, 지방에 거주하는 어르신이 수업을 듣기 위해 KTX를 타고 올라왔다 내려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액티브 시니어를 주요 소비층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방송·광고 업계는 만 20~49세를 구매력 있는 핵심 소비자로 본다. 이 핵심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제품을 기획하고 마케팅 비용을 쓴다. 하지만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신문·TV 광고를 보고 제품 구매를 고려하는 광고 수용도에서 액티브 시니어는 젊은층과 차이가 없었다. 나이가 많을수록 광고 효과가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50대 이상 액티브 시니어 시장은 구매력이 풍부하지만, 경쟁 기업은 적은 ‘블루오션’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과거의 고령층은 빈곤율이 높고 노후 준비가 미흡했던 반면, 고령 사회를 이끌 현재의 50대는 스스로 부양할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오락 등에 소비할 여력이 많다"고 분석했다.
◇자산도 많고 인구수도 많다
잠재 소비자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이상 인구는 지난해 기준 총인구의 38.22%였다. 방송·광고 업계를 비롯한 콘텐츠·레저·관광 산업에서 주요 소비 연령층으로 분류하는 만 20~49세의 비중이 43.57%로 집계됐는데, 여기에 버금간다. 통계청은 액티브 시니어 관련 시장 규모가 2020년 149조원으로, 10년 전(44조원)보다 세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액티브 시니어는 한국에서 자산이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지난해 통계청의 가계 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 보유액은 50대 가구주가 3억9419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 가구주가 3억5817만원으로 두 번째였다. 50대와 60대 이상의 순자산이 40대(3억4426만원)와 30대(2억3186만원)보다 많았다.
자산이 많아서 소비도 많이 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2015년 트렌드 및 소비자 분석 자료’를 통해 액티브 시니어의 여유로운 소비를 분석했다. 액티브 시니어는 지난 1년간 26%가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고 답했는데, 이는 다른 연령대보다 두 배 높다. 28%는 공연 관람 등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7%가 외모를 꾸미기 위해 돈을 지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응답해 30대(65%), 40대(57%)보다 외모에 더 많이 신경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등 IT 기기 사용에 익숙하고 온라인 쇼핑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도 액티브 시니어가 기존 노인들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50대와 60대 이상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2018년 기준 각각 96%와 77%로 집계됐다. 7년 전인 2012년 각각 46%, 14%의 이용률을 보인 것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50대의 경우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했던 20·30대의 스마트폰 이용률(99.5%)에 별로 뒤지지 않았다.
나아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 이용하는 성향도 뚜렷하다. 이는 유튜브 이용 시간으로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올해 4월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의 유튜브 앱 사용 시간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의 월간 시청 시간이 101억 분으로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이어 10대(89억 분)가 뒤를 이었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콘텐츠 소비자에서 나아가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데 도전한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은 ‘전성기캠퍼스’를 통해 '1인 방송 유튜버 도전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회 수업에 수강료가 1만6000원으로 저렴해 인기가 많다. 국민연금공단도 50대 이상을 위한 ‘1인 크리에이터 과정’이라는 동영상 제작 강좌를 운영 중인데, 호응이 뜨겁다.
plus point 액티브 시니어가 사는 법
◇ 행당동성당 ‘대표 찍사’…손수 찍은 사진으로 성당 달력 제작
퇴직 후 느낀 감정
"불안. 퇴직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주부로 살다가 안전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2009년부터 학교에서 안전교육 담당자로 6년간 근무했다. 건강검진에서 ‘큰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예상치 못하게 퇴직했다. 나중에 오진으로 밝혀져 안심했지만, 그만두고 나니 다시 일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취미
"사진 촬영이다. 퇴직 후 행당동성당을 다니며 사진 촬영에 취미를 붙였다. 요즘도 성당의 행사 사진 촬영은 내 몫이다. 행당동성당에서 1년에 한번씩 성당 달력을 제작하는데, 달력에 들어가는 사진도 내가 전부 찍는다. 올해는 행당동성당 50주년이라 신부들 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 12월에 많은 신자 앞에서 사진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설렌다. 부모님 없는 아이들의 성장 앨범도 찍어주고 있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지난해 4월, 성당 간부진 6명과 함께 천주교의 ‘공소’에 대한 책인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 공소’를 냈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신자들끼리 만든 예배당인데, 작은 섬이나 외곽에는 이런 곳이 꽤 있다. 전국의 ‘공소’ 800군데를 2년 동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국내에서 공소를 소재로 한 첫 책이라고 자부한다."
퇴직 후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
"출사를 다닐 때 쓰고, 렌즈 등 카메라 용품을 구입하는 데 많이 쓴다."
70·80대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남편과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고 싶다. 시골 곳곳을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어 개인전을 열고 싶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
"감사한 일이 많아진다. 출사를 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는 것, 건강한 것,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란 것 등에 감사한다.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를 하는 것도 감사하다.(웃음)"
◇퇴직 후 삶, 책으로 냈죠. 매일 행복한 전직 건설사 상무님
퇴직 후 느낀 감정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 싶어 심란했는데, 정작 일을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 무척 좋다."
취미
"스키·수상스키·바둑·등산 등을 했고 은퇴 후 새로 시작한 취미는 그림 그리기다. 화요일마다 수채화 수업을 받는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잡생각이 나지 않아 좋다."
퇴직 후 하루 일과
"나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선택권이 생겼다는 점에서 퇴직 전과 큰 차이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도 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즐겁다.(웃음) 영업직이었기 때문에 술을 억지로 많이 마셨고 너무 힘들었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1년 반 동안 준비해 ‘신중년, 내 인생의 선물’이라는 책을 냈다. 직장 생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쓴 책이다. 올해 초에는 책 쓰기에 대해 ‘노원 50플러스센터(서울 노원구의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관)’에서 강의를 했다. 강의 준비가 생각보다 힘들어서 ‘괜히 한다고 했나’ 살짝 후회했다. 그런데 수강생들이 ‘나도 책을 쓰고 싶은데 조언해달라’면서 찾아왔을 땐 감동이 북받쳤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참 행복했다."
노후 걱정은 없는지
"퇴직 직전 7년간 임원이었는데, 이때 저축을 많이 해놓아서 노후 걱정은 없다. 매월 일정 생활비를 손에 쥘 수 있게 설계해 놨다. 국민연금도 올해 7월부터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전 직장에 출근은 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문을 하고 조금씩 수당을 받는다. 스카우트 제의가 왔던 적도 있지만 거절했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
"나이 든다는 것은 선물이다. 나이가 드니 비로소 무척 행복하다. ‘누구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 즐거운 것만 하면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이 셋 키워낸 워킹맘…이젠 시인이라 불러주세요
퇴직 후 느낀 감정
"퇴직하는 시점에는 굉장히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다. 그동안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2011년 남편과 사별했다. 혼자 아이 셋 학원도 보내고, 대학 진학도 도와주면서 회사도 다니느라 힘들었다. 퇴직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후련하다. 다만 가끔씩 ‘나는 아무 데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구나’ 싶어 서글플 때도 있기는 하다."
취미
"4년 전부터 플룻을 배웠다. 연습할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모니카도 연습하고 있다. 가볍게 배우기 좋은 악기다."
퇴직 후 하루 일과
"오전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시킨 후에 청소와 빨래 등 집안 정돈을 한다. 마음이 아주 편하다. 퇴직 전엔 7시 30분까지 출근했고, 아이들보다 먼저 집에서 나오다 보니 항상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올해 7월부터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쓰는 것이 생각보다 꽤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책을 냈다. 올해 3월 국민연금공단에 ‘작가 탄생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신청했다. 한 달 동안 책 쓰기에 대해 배웠고, 그 결과 ‘벚꽃 피면 그대’라는 시집을 냈다. (환하게 웃으며) 글쓰기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줌마였는데 시인이 된 거다."
퇴직 후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
"퇴직 전과 똑같다. 다만 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어떤 항목의 지출을 줄여야 하나 고민할 뿐이다."
생활 정보를 얻는 채널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알게 된 동료 수강생들(50대 이상 은퇴자들)에게 듣는 것이 많다. 특출 난 사람들이 많아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사실 워킹맘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또래 집단이 전업주부에 비해 별로 없다. 그래서 재테크 등 정보에 밝지 않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난해 4월부터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까지 그 모든 슬픔, 기쁨, 절망, 행복을 다 겪어가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굳이 또?’라는 생각이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빠요…타악기 동호회 ‘떼아모’ 회장
퇴직 후 느낀 감정
"해방감이 들었다. 아침 일찍 바삐 회사로 가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았다. 그런데 퇴직 후 한 달이 지나니 멍하고 공허했고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항상 긴장 상태로 지내다 긴장이 풀려서 아팠던 것 같다. 동네 주민센터에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면서 감쪽같이 나았다."
취미
"취미가 너무 많다.(웃음) 중년이 되면 춤·악기·언어를 배우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댄스 스포츠를 배웠고, 각종 타악기와 오카리나, 플룻을 배웠다. 타악기 동호회 ‘떼아모’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떼아모는 스페인어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한다. 떼아모 회원들 공연하는 모습을 모아 영상을 제작하고 싶어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1년간 배웠다.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 라이나전성기재단에서 캘리그래피(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도 배우고 있다. 손녀나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예쁘게 손글씨를 써서 선물하고 싶어서다. 요즘엔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합창을 한다. 10월 4일 전국 체전 개막식에서 합창 공연이 예정돼 있다."
퇴직 후 하루 일과
"회사 다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 9시에 나가서 5시에 들어온다. 하루에 수업 1~2개 정도 듣는다. 커피숍에서 숙제도 한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장애인,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두드리고 만들고 즐기고’ 봉사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떼아모 회원들이 6개월간 종로 농아인협회와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타악기를 가르쳤다. 칠판에 ‘쿵’ ‘따’라고 적어서 연주법을 가르쳤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 싶어 대화를 좀 해보니, ‘가슴으로 파동이 느껴진다’며 환히 웃었다. 가슴이 찡했다."
퇴직 후 가장 지출이 많은 항목
"취미 활동 수업료와 여기에 필요한 재료 구입비."
정보를 얻는 채널
"라이나전성기재단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퇴직 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교육을 들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도움되는 웹사이트를 알려준다."
◇지금처럼 행복하게 늙고파…내 삶 담은 에세이집 냈죠
퇴직 후 느낀 감정
"아이를 키우느라 회사를 그만뒀다. 한창 육아에 전념하며 살던 중,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착잡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진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봉사활동을 했고 점차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식사 챙겨드리고, 못 오시는분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서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자서전을 겸한 에세이집인 ‘공자왈의 나들이’라는 책을 냈다. 학창시절 ‘공자님처럼 옳은 말만 한다’는 의미로 ‘공자왈’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여기서 따온 말이다. 아들, 며느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책에 사인을 해서 주변에 나눠 주기도 한다.(웃음) 국민연금공단의 ‘작가 탄생 프로젝트’ 강연을 듣고 용기를 얻어 책을 쓸 수 있었다."
퇴직 후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
"건강 관리에 가장 많이 쓴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에도 돈을 많이 쓴다. 강원도 정선에 별장을 지을까 하고 준비하고 있어서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씩 강원도에 가느라 돈을 좀 쓴다."
노후 대비
"젊었을 때부터 개인연금에 가입해 놔서 경제적인 부분은 큰 걱정 없다. 다만 건강 걱정이 있어 수영도 하고 골프도 친다."
생활 정보를 얻는 채널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읽는다.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 엄마들 모임을 이어 가고 있어 모임이 많다. 그런 자리에서 정보 교환을 많이 하게 된다."
70·80대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지금처럼 살고 싶다. 애들도 다 키웠기 때문에 지금은 오직 나에게 집중하며 내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랄까."
‘나이 듦’에 대한 생각
"나이가 드는 것은 식물로 따지면 과일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잘익은 맛있는 열매를 골고루 챙겨 먹을 수 있는 시기다.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시점이다."
◇41년간 음악 가르치던 교장 선생님, 이젠 악기 연주 봉사해요
퇴직 후 느낀 감정
"41년간 선생님으로 일했는데, 퇴직하면 뭘해야 하나 생각하니 너무 답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즐겁다. 더 빨리 퇴직할 걸 그랬다 싶을 정도로 즐겁다."
취미
"오카리나·아코디언 연주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한다. 교직에 있을 때도 음악이 나의 주특기였다. 우리 반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시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서울시초등음악연구회장도 했었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만 했지, 내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공연해본 적은 없다. 이제는 직접 연주를 하니 아주 재밌다. 일본어도 배운다. 머리를 계속 쓴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잘 외워지지는 않지만,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로 보람을 느낀다."
퇴직 후 하루 일과
"일할 때보다 일찍 일어난다. 지금이 더 바쁘다. 일단 아침 6시에 일어나 일본어 예습·복습을 하고, 오카리나와 아코디언을 연습하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 일할 땐 7시에 일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서울시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퇴직 교장선생님들 모임이 있어, 그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거나 당구를 친다."
퇴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구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아코디언 연주 봉사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교회에서 동네 노인들에게 무료 점심을 주는 자리가 있었는데 아코디언 연주를 했다. 당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때 ‘나도 이런 호응을 받을 수 있구나’ 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퇴직 후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항목
"문화 생활과 외식에 쓴다. 퇴직 전엔 못 했기에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다."
노후 걱정은 없는지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어 큰 걱정은 없다. 또 아내가 그동안 월급을 차곡차곡 잘 모아줘서 괜찮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
"나이가 들면 체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젊었을 때보다 활기차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오카리나·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날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즐겁고 행복하다. 나이를 먹었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할 것을 찾아다녀야 한다. 자기가 노력만 한다면 배울 것도, 할 것도 참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