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로 올라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리꾼으로서 오랫동안 바라온 상이었기에 대통령상을 품에 안는다면 눈물을 펑펑 쏟을 거라 생각했다.

막상 이름이 불리니 얼떨떨했다. "'드디어 받았구나!' 희열을 느끼면서도 길고 긴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온 듯한 허탈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복잡미묘한 심정이에요."

"저 아이 이름일랑, 청이라고 불러주오" 23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27회 임방울국악제 결선에서 소리꾼 정혜빈씨가 '심청가' 중 곽씨 부인이 유언을 남기는 대목을 부르고 있다.

커다란 눈동자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23일 세 소리꾼이 겨룬 임방울국악제 결선. 풀빛 고름을 단 한복을 입고 판소리 '심청가' 중 '곽씨 부인의 유언'을 부른 정혜빈(35)씨는 경연자 중 가장 높은 점수(98.2점)를 받으며 판소리 명창부 대상인 대통령상의 주인이 됐다. 지난해 최우수상(방일영상)을 받았고, 네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올해 순금 트로피를 거머쥔 정씨는 "스승인 성창순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잘했다, 내 새끼!' 안아주셨을 거다"며 "목을 아끼느라 한동안 피했던 아이스 라테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는 심 봉사의 아내인 곽씨가 심청을 낳고 죽어가면서 남편에게 유언을 남기는 대목을 불렀다.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없는 이 설움을 너로 하여 품게 하니, 죽는 어미 사는 자식 생사 간에 무슨 죄냐?" 핏덩이 딸 떼어놓고 북망산천에 가는 어미의 심정을 느릿한 진양조장단에 실어 토해내던 그는 "저 아이 이름일랑 청(淸)이라고 불러주오" 이르는 데에서 가느다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잘한다!" "얼쑤" 등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네에서 상쇠도 하고 소리꾼들 북 장단도 쳐주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여덟 살부터 가야금, 열 살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그의 스승은 시원한 음색과 박력 있는 창법으로 자신만의 '보성 소리'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성창순(1934~2017) 명창이다.

서울대 국악과 졸업 후 2013년 결혼해 연년생 두 딸의 엄마가 됐으나 기쁨도 잠시, 예상 못 한 난제와 맞닥뜨렸다. "악기는 망가지면 새 걸 사면 되는데, 소리꾼은 몸이 곧 악기. 애를 낳고 나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 다른 몸이 돼버린 거예요." 아랫배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목은 자주 쉬고, 음역대는 좁아진 듯했다. 노래 말고 다른 삶은 한시도 꿈꾼 적이 없는데 소리가 뜻대로 안 나오니 고민이 많았다.

휘청대던 그를 잡아준 사람이 성 명창이었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소리는 부르고 또 불러서 곰삭아야 제맛이 나는 거여'라고." 이제 겨우 30대 중반.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터득하다 보면 언젠간 소리에 끌려가지 않고 자유자재로 소리를 가지고 노는 소리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소리를 했다. 이번 대회 결선에서 '곽씨 부인의 유언' 대목만은 제발 부르지 않게 해달라 빌었던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상창(上唱)이 많아 줄곧 높은 음으로 불러야 해서'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 직전 제비뽑기로 이 대목을 뽑은 그는 소리를 하는 도중 당이 떨어질까 봐 설탕 한 스푼을 꿀꺽 삼키곤 속으로 '할 수 있다!' 부르짖었다. 그의 진짜 꿈은 "득음(得音)의 경지에 올라서 판소리는 판소리답게, 가요는 가요답게, 팝송은 팝송답게 부를 줄 아는 가수가 되는 것"이라 했다.

[제27회 임방울국악제 수상자]

판소리 명창부▷임방울대상(대통령상) 정혜빈▷최우수상(방일영상) 오민아▷우수상 김선영▷준우수상 김문희

판소리 일반부▷최우수상 서의철▷우수상 송은주▷준우수상 김근희▷장려상 이진주

가야금병창▷최우수상 김소예▷우수상 윤세인▷준우수상 신지은▷장려상 서경진

농악▷대상 충남당진농악단▷최우수상 지산농악보존회▷우수상 부안우도농악단▷준우수상 고창방장농악단

시조▷최우수상 강재일▷우수상 송명희▷준우수상 안귀향▷장려상 조무송

무용▷최우수상 안명주▷우수상 오만종▷준우수상 정세아▷장려상 정유청

기악▷최우수상 강서연▷우수상 차승현▷준우수상 윤휘수▷장려상 조혜리

퓨전판소리▷최우수상 올라▷우수상 앙상블카덴차▷준우수상 비담▷장려상 아미고